도내 양봉농가 450곳 대부분 크고 작은 피해

도 "따뜻해진 기후 탓으로 추측, 실태조사 착수"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그 많은 벌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어디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서 양봉업을 하는 이상일(53) 씨는 28일 텅 빈 벌통을 열어보며 이같이 토로했다.

실제 벌통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꿀벌과 윤기 흐르는 꿀 대신 죽은 꿀벌 몇 마리와 말라비틀어진 밀랍 조각만 있었다.

이씨는 지난달 중순께 월동하는 꿀벌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벌통을 열었다 자식같이 아끼던 꿀벌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벌통 200개를 차례로 열어 봤더니 18개를 뺀 182개가 텅 비어있었다.

이씨는 "지난해 9월 잡화꿀 채취를 끝내고 10월부터 월동에 들어갔던 벌이 그새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18개 벌통에 있는 꿀벌들도 건강하지 못하고 비실비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37년째 양봉을 하고 있다는 이순철(64) 씨도 이러한 상황은 매한가지다.

이씨는 "어째서인지 최근 2∼3년 동안 꿀벌이 평년보다 부쩍 사라지면서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한 철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농가에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가을께부터 꿀벌 감소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꿀벌 수가 적어진 벌통을 다른 벌통에 합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6개월 새 당초 300통이었던 벌통이 120통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제주지역 양봉농가는 대부분 연초에 1만∼1만5천 마리의 벌이 들어 있는 벌통을 필요한 만큼 사들인다. 이후 벌통 1개당 3만∼3만5천까지 늘려 꿀을 채집한다.

벌통 1개당 벌 3만 마리가 살았다고 가정하면 이씨 양봉장에서만 540만 마리가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셈이 된다.

그는 "작년의 경우 벌통 1개를 15∼18만원에 사 왔는데 올해는 벌이 없어 벌써 벌통 1개당 25∼30만원까지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토로했다.

한국양봉협회 제주도지회에 따르면 도내 양봉농가 450곳 중 대부분이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이 같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가 심한 농가는 전체 벌통 중 90% 이상이 비었으며, 절반 이상 피해를 본 곳도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러한 꿀벌 집단 실종 원인이 이상 기후 등으로 추정될 뿐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지난주 피해 현장을 방문해 농가 의견을 청취하고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 등 실태조사에 나선 상태다.

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보면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따뜻해진 기후 탓에 벌들이 면역력이 약해져 여러 질병에 취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 꿀벌응애(기생충), 약제의 잘못된 사용 등 여러 원인을 놓고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dragon.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