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들, 1941년 처칠 전 수상 연설과 비교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그의 연설이 1941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미 의회 연설만큼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와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오전 화상을 통해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진행한다. 개전 이후 그가 미 의회를 상대로 연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전투기·방공 미사일 등 추가적인 군사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8억 달러(9천90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 미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WP는 '처칠이 젤렌스키의 연설 80년 전 (연설로) 미국이 전쟁에 마음을 단단히 먹게 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간 외국 정부들에게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고 호소해 온 것처럼 처칠도 추축국들에 반격하기 위해 미국에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면서 둘의 '닮은꼴'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WP는 처칠이 했던 장문의 연설을 다시 소개했다.

처칠이 미 의회에서 연설했던 1941년 12월 26일은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지 2년 이상 지난 시기로, 런던은 독일의 집중 공습을 받고 있었다. 당시 처칠은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전쟁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그때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연설에서 "적들이 '악인'인지 몰랐느냐"고 물은 뒤 "침략자들을 무력으로 물리치지 못하면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미국 국민들을 독려했다.

이듬해인 1942년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과 '연합국 공동 선언'을 체결하고 독일·이탈리아·일본으로 이뤄진 추축국과 싸웠다.

폭스뉴스는 "젤렌스키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첫 번째 정상은 아니지만 처칠 이후 가장 위험에 처한 지도자의 연설일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을 처칠과 비교하는 평가가 늘어나자 젤렌스키 본인도 처칠의 연설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일 영국 하원 연설에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1940년 6월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에 고립돼 나치 독일군에 전멸당할 위기에 몰렸던 영국군과 프랑스군 수십만 명을 무사히 철수시킨 뒤 처칠이 영국 의회에서 했던 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따와 우크라이나는 '살기'(to be)로 결론지었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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