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굴레서 해방' 작년 10억명 구입 추산

심리학자 "시시콜콜 시간 쓰지 않아 자유·사생활 확대"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라디오를 듣고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인터넷 연결이 안 돼 앱을 쓸 수 없는 '멍텅구리폰'이 부활하고 있다고 영국의 BBC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90년대 말에 유행했던 이 구식 이동전화기 판매가 다시 느는 것은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기 삶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BBC는 전했다.

영국 런던에 사는 올해 17살의 로빈 웨스트 양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혼자 유일하게 멍텅구리폰을 갖고 있다.

그녀는 2년 전 중고폰 판매점에 들렀다가 생김새가 투박해 흔히 '벽돌'이라고 불리는 구식 전화기를 샀다.

프랑스의 모비와이어 제품으로 가격은 8파운드(약 1만3천 원)에 불과했고 스마트폰 기능이 없으니 매달 데이터 사용료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턱없이 싼 가격에 혹해 즉석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정에 만족해하고 있다.

웨스트 양은 "이 휴대전화기를 사기 전에는 내 삶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영역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며 "각종 소셜미디어 앱에 매달리느라 일을 못 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다시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면서 "이 벽돌폰 때문에 내 삶이 지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은 모든 일에 앞서 나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멍텅구리폰을 사려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SEM러시'에 따르면 이 구식 폰을 사기 위해 구글을 검색한 건수가 2018년과 2021년 사이 89%나 증가했다.

멍텅구리폰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추적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 이 폰이 10억대나 팔려 2019년 4억 대와 비교하면 2.5배나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다.

반면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14억대로 전년과 비교해 12.5% 줄어들었다.

회계사 단체인 들로이트는 스마트폰을 가진 영국인 10명 중 1명은 멍텅구리폰을 갖고 있다고 지난해 밝힌 바 있다.

가격 비교 사이트인 '어스위치 닷 컴'의 모바일 기기 전문가인 에르네스트 도쿠 씨는 "일종의 패션이고 향수이며 멍텅구리폰이 틱톡 비디오에 등장하는 것도 구식 전화기 부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중 다수는 첫 이동식 전화기로 이 멍텅구리폰을 사용한 경험이 있어 향수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도쿠 씨는 노키아가 2000년 시판돼 당시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였던 3310 모델을 2017년 재출시한 것이 멍텅구리폰 부활의 발화점이었다며 "노키아는 이 모델을 값비싼 고성능 스마트폰의 대체재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멍텅구리폰은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애플이나 삼성 스마트폰과 경쟁할 수 없지만, "멍텅구리폰은 배터리 수명이나 내구성 면에서는 그들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인 플제멕 올레니작이 5년 전 노키아 3310 모델로 바꿔탄 이유도 바로 배터리 수명 때문이었지만, 이 폰을 쓰면서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전에는 뭘 찾거나 페이스북을 뒤적이고 뉴스를 보고 또 내가 알 필요가 없는 것까지 찾아보는 등 나의 모든 일상이 스마트폰에 매여 있었다"며 "지금은 내 가족과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큰 장점은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남들과 무엇을 공유할지에 대해 코멘트하거나 내 삶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내 사생활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우치에 사는 올레니작 씨는 그러나 스마트폰에서 멍텅구리폰으로 바꿔 탄 것은 일종의 도전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에는 여행할 때 버스 편을 알아보거나 식당을 찾는 일 등을 모두 스마트폰으로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 집들 나서기 전에 모든 것을 미리 알아둬야 한다"며 "지금은 익숙해졌다"고 밝혔다.

k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