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준 위반 지적…"소수자·저소득층에 특히 피해"

대법원 결정 앞 미 정부 "어떤 판결 나와도 폭력시위 우려"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기존 판결을 파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유엔 인권 최고대표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AFP 통신 등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이날 플로리다주 패너마시티에서 열린 블룸버그 주최 경제 포럼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50년 이상 지속되던 권리를 되돌리는 결정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는 국제인권 기준에 반한 여성권의 엄청난 후퇴"라고 밝혔다.

그는 낙태권이 축소되면 특히 저소득층과 소수민족 여성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그는 "낙태를 법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낙태가 줄어들지 않는다"며 "낙태하려는 여성이 숨어 들어가 이들의 건강만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낙태권을 제한하려는 일부 주(州) 정부를 향해 "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여성이 자신의 신념을 따르고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며 다른 선택지에 모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특정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주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대법관들의 다수의견 초안을 입수해 대법원이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對) 로이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다음 달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 판결이 기존 판례를 뒤엎으면 낙태권 존폐 결정은 주 정부와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간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 우세인 주들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낙태권을 극도로 제한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는 낙태권 폐지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반대 시위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은 미 국토안보부(DHS) 정보분석국이 지난 13일 각 주 정부에 서면을 통해 낙태 문제와 관련 극단주의자들의 폭력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AP가 입수한 DHS의 보고서에 따르면 DHS는 "역사적으로 낙태 문제와 관련된 폭력 사태는 주로 낙태를 반대하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벌어졌지만, 앞으로는 낙태 제한에 대한 불만이 낙태권을 찬성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낙태 문제와 관련한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신념에 따라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낙태 반대론자들이 의료 기관에 불을 지르고 폭탄 공격을 한 사례가 수십 건에 이르며 이로 인해 최소 1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최근 위스콘신주에서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사무실에 방화가 벌어지고, '낙태가 안전하지 않다면 당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낙서가 현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낙태와 관련 대법관과 의원, 공직자, 성직자, 의료기관 종사자들을 위협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며 이 중 최소 25건이 조사를 위해 수사 당국에 전달됐다고 AP는 전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미 연방보안관실(USMS)이 대법관들을 24시간 경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laecor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