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최근 불어닥친 최악의 폭염 속에 기후변화에 대한 영국 런던 등 유럽 국가 도시들의 준비 부족 실태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온난화 탓에 앞으로 유럽에는 폭염의 강도가 세지고 빈도도 더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유럽 주요 도시의 기반시설이나 제도·정책은 기후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19일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최고기온 40도를 찍은 런던의 구조 당국은 온열질환으로 인한 응급 신고 전화가 1주일 전보다 10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19일 화재 신고가 2천600통에 달해 소방대가 2차대전 이후 가장 바쁜 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하루 350통 정도인 평소 신고량의 7배 이상이다.

런던에서는 이날 하루에만 화재로 시설물 41곳이 불에 탔다. 화재 상당수는 풀밭이나 야산 근처였다. 폭염으로 인한 열기가 일부 불씨로 변하고, 이 불씨가 급격하게 확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곳이다.

철도 운행도 파행했다. 폭염에 전력선이 훼손되거나, 철로 팽창으로 인해 승객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철도시설공단인 네트워크레일은 기후변화 대처방안을 논의할 태스크포스(TF)를 뒤늦게 꾸렸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도시계획 전문가 필립 로드 박사는 NYT에 "런던의 철도, 에너지 시스템, 학교, 병원 등은 기온이 영하 10도에서 영상 35도까지 사이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어제는 그 범위를 넘어버렸다"며 대혼란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유럽 주요 도시에 지어진 주택 대부분은 열을 배출하기보다 최대한 보존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상당수가 환기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영국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주요 도시 상당수는 고층 빌딩이 밀집한 도심인데, 이런 곳에는 열기를 낮춰주는 녹지 확보가 쉽지 않다. 포장된 지면은 열에 더 쉽게 달궈지고 한 번 달궈지면 열을 오래 보존한다. 이는 도심 열섬 현상의 원인이 돼 평균 기온을 밀어올린다.

노후화한 런던 지하철은 대다수 에어컨 시설이 없다. 지어진 지 오래된 터널에는 환기구도 부족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폭염이 다시 찾아오면 열차 내가 급격하게 뜨거워져 질식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나온다고 NYT는 지적했다.

런던시는 취약계층이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급진적인 폭염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국 중앙정부를 향해서는 "폭염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있다. 런던을 뜨겁게 달구는 위험을 해소하려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의 유명 엔지니어링 설계기업 아룹의 유럽 통합 도시계획 네트워크 담당자는 "유럽 주요 도시들이 온난화의 현실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훨씬 빨리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드 박사는 "기상학자, 언론, 도시계획 전문가, 기후 전문가들의 경고를 '히스테리'로 치부하던 사람들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 이번 폭염으로 입증됐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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