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진 논문…"동물도 좌횡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꿀벌은 숫자를 셀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큰 수가 놓인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6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툴루즈 대학과 스위스 로잔 대학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이러한 내용이 담긴 논문을 최근 게재했다.

연구진은 한쪽에 구멍이 뚫린 여러 개의 상자를 준비한 뒤 가장 안쪽 벽면 정가운데 1∼5개의 도형이 그려진 표적지를 설치하고 한 마리씩 꿀벌을 들여보냈다.

표적지 중간에는 설탕물이 나오는 구멍을 만들었다.

특정한 개수의 도형이 그려진 표적지에 가면 설탕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꿀벌에게 반복 각인시킨 것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툴루즈대 동물인지연구센터의 마르틴 기우르파 교수는 꿀벌이 도형의 개수로 설탕물이 나오는 표적지를 구별할 수 있다면서 "기존 연구에서 꿀벌은 최소 5까지 숫자를 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꿀벌이 숫자를 어느 방향으로 세는지 검증하려 시도했다.

설탕물이 나오는 표적지를 제거한 다음 좌우 양쪽에 훈련에 쓰인 것과 다른 개수의 도형이 그려진 그림 두 장을 각각 붙여놓고 꿀벌이 어느 쪽으로 먼저 향하는지 살핀 것이다.

도형 3개가 그려진 표적지로 훈련한 꿀벌에게 도형 1개씩이 그려진 그림 두 장을 제시했을 때는 약 80%가 왼쪽 그림을 택했다. 숫자 '3'을 찾으려고 '1'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 세어 나가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꿀벌을 도형 5개씩이 그려진 그림 두 장이 붙은 상자에 넣었을 때는 반대로 오른쪽 그림부터 먼저 확인하는 경향이 나타나 '5'부터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3'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꿀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큰 숫자가 놓인다고 인식한다고 풀이되는 결과다.

마찬가지로 도형 1개짜리 표적지로 훈련한 꿀벌에게 도형 3개가 그려진 그림 두 장을 보여주면 오른쪽을 택했고, 도형 5개짜리 표적지로 훈련한 꿀벌은 같은 상황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작은 수나 적은 양은 왼쪽, 많은 수나 많은 양은 오른쪽과 연관 짓는 이른바 '정신적 수직선'(mental number line)이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일 수 있다고 AFP 통신은 평가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쓰는 우횡서(右橫書)를 채택 중인 중동 지역 주민들은 이와 정반대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까닭에 이것이 뇌구조 등과 연관된 생래적 특징인지, 문화적으로 습득되는 것인지와 관련해선 상당한 논란이 있어왔다.

기우르파 교수는 태어난 그대로의 방식으로 숫자를 인식하는 꿀벌과 달리 인간은 학습을 통해 인지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숫자를 세는 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경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고 AFP는 전했다.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