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때마다 중국 비협조로 美로 펜타닐 유입 증가

中화학기업들, 멕시코 마약카르텔에 펜타닐 성분 등 판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국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의 급속한 확산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정치적인 갈등을 문제 삼은 중국의 변심이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펜타닐은 주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대량 제조해 미국에 유통하는데, 인권·대만 문제 등과 관련한 미국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자국의 펜타닐 성분 제조사들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헐겁게 잡아 미국 내 펜타닐 유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펜타닐은 고통이 심한 암 환자 등에게 투약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약성 진통제다. 식물을 활용해 만드는 코카인·마리화나(대마초)와는 달리 펜타닐은 100% 인공적인 화학물질이다.

중독성이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에 이르는 펜타닐은 다른 마약과 혼합해 유통되는데 펜타닐 치사량은 2㎎으로 알려졌다.

WSJ은 2018년부터 미중 양국이 펜타닐의 불법적인 유통을 막기 위한 협력을 시작했고, 중국이 자국 내 화학기업들의 펜타닐 성분 생산과 판매를 제한함으로써 미국 내 유통도 줄었으나 미중 충돌 때마다 중국의 비협조가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은 지난 8월 2∼3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반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미국과의 펜타닐 관련 대화를 거부했다.

지난 3월과 5월, 7월에도 미 행정부는 주미 중국대사관 측과 펜타닐 관련 논의를 했으나 8월부터 중국 측이 모든 회담을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은 회담을 통해 중국 화학기업들과 멕시코 마약 카르텔 간 펜타닐 성분 거래 차단을 요구해 펜타닐의 미국 유입을 제한해왔으나 협력 채널이 막힌 셈이다.

이에 중국 측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때문에 회담에 불응한다고 걸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회담 중단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 미중 관계가 나아지는 기미가 있지만, 미국으로의 펜타닐 불법 유입은 줄지 않고 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전직 관리인 러셀 홀스케는 중국의 화학기업들과 멕시코 구매자들이 온라인으로 거래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해 결제하는 식으로 추적을 피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화학기업들이 펜타닐 성분인 4-AP와 4-ANPP 등을 건네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1·2차 가공을 통해 펜타닐을 제조하고, 합성 마약 등을 만들어 유통하며, 미국 내 중국계 은행을 통해 거래대금이 오간다고 한다.

실제 DEA에 따르면 2020년 5월 멕시코 엔세나다 항구에서 현지 당국이 중국발(發) 컨테이너 선박 수색을 통해 분말 비누 선적물에 숨겨진 4-AP 등 화학물질 375파운드(175㎏)를 발견했다.

이런 가운데 유엔마약위원회는 지난 3월 규제 물질 목록에 4-AP를 추가했으나, 회원국인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 신문은 지금도 중국어 연락처 정보가 있는 수십 개의 웹사이트에서 4-AP가 판매되고 있으며 유엔마약위원회가 규제 목록에 포함한 이후에는 4-AP 유사품을 중국 화학기업인 한훙이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0일 DEA는 올해 미국 내에서 펜타닐 알약 5천60만 정과 가루 1만 파운드(약 4천536㎏)를 압수했다면서, 이는 모두 3억7천900만 회 복용할 수 있는 양으로 작년에 압수된 양의 2배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집계 결과,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2개월 동안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7천375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67%가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 중독인 것으로 나타났다.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