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유산 외면 안돼"…정부, 국제사회에 세계유산 제도 본령 강조할 듯

대응 수위 낮아져 '성명→논평', '강한 유감→유감 표명'…관계개선 흐름 고려 관측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일본이 한국 정부의 반발에도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다시 추천하면서 향후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일 밤(한국시간)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사무국에 사도광산을 내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정식 추천서를 제출했다.

당초 일본은 올해 중 등재를 노리고 지난해 2월 추천서를 제출했지만, 유네스코로부터 서류 미비점을 지적받아 한 차례 제동이 걸렸다. 이번에 수정된 추천서를 다시 제출한 것은 등재 강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9월에 잠정 추천서를 냈기 때문에 정식 추천서를 다시 제출하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정부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문제는 한일 간 앙자 외교 사안이라기보다는 세계유산 제도의 기본 취지 및 보편적 인권 차원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에서 "전시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포함한 전체 역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와 함께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시기를 에도(江戶) 시대(1603∼1867)로 한정했는데, 이는 근대 이후 벌어진 강제노역의 역사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태도는 강제노역 등 어두운 역사, 이른바 '부(負)의 유산'까지 균형 있게 기술하라는 세계유산 제도의 정신에 맞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를 비롯한 근대산업 시설을 등재할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 것도 결국 어두운 역사까지 균형있게 알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은 당시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또 다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까지 등재 시도를 거듭한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 심사를 거쳐 21개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사도광산 등재 여부는 내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세계유산위원국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은 내년부터 4년 임기의 위원국 선거에 입후보한 상태이며 올해 11월 선거가 치러진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아태 지역 2개 공석이 있는데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입후보 중이다. 적극적으로 지지교섭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당장은 사도광산 문제로 일본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일 정부가 관계개선을 위한 핵심 고비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해 막바지 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코모스 심사 등 등재 관련 절차가 본격화되지 않은 만큼 양자 관계 개선 흐름이라는 큰 틀을 감안하면서 일단은 물밑 외교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28일 일본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처음으로 공식 결정했을 때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반면 이날 재신청에 대해선 형식상 '성명'보다 수위가 낮은 '논평'을 내고 '유감을 표명한다'는 표현을 썼다.

사도광산 문제를 두고 한일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역시 강제징용 협상 등 전반적인 한일관계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세계유산협약 운영 지침은 유산 등재 신청 전에 다른 국가들과의 잠재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관련국과 '건설적 대화'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어 어느 시점에는 한일 간에 소통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군함도 관련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등 강제징용 역사를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가 이번 사도광산 등재 신청으로 재확인된 만큼 국내 여론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