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폴란드·러시아서 몇시간차 두고 '결의' 표명할 듯

푸틴, 전쟁명분으로 '서방의 러시아 침략' 주장할 듯

키이우 방문으로 푸틴 연설 재뿌린 바이든, 민주주의 강조 관측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1주년을 앞두고 21일(현지시간) 신냉전의 향배를 보여줄 연설 대결에 나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격화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체제의 진영대결이 두 지도자의 입을 통해 선언적으로 재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설은 각각 폴란드 바르샤바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천여㎞ 거리를 두고 몇 시간 차로 열린다.

푸틴 대통령이 먼저 모스크바 중심지에 위치한 전시장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상·하원 의원, 군 지휘관, 병사들을 상대로 국정연설을 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컫는 러시아 정부 용어)이 주제라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국영TV에 나와 "우리의 발전과 삶에 있어 이렇게 중요하고 복잡한 국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평가를 듣기를 희망하며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미국 등 서방에 반감과 피해의식을 드러내고 국민의 국수주의를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작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탈나치화, 탈군사화, 이를 통한 우크라이나 주민에 대한 구원을 주요 명분으로 들었다.

탈나치화는 우크라이나 친서방 정권의 축출과 친러시아 정권 수립, 탈군사화는 서방 군사자산의 우크라이나 철수로 각각 해석돼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토라는 지론 속에 애초 전쟁 명분을 재차 강조하고, 나아가 서방의 러시아 침략까지 주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나치즘에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침략에서 구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를 침략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이 서방에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러시아에서는 국민을 집결하는 호소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선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바르샤바 고성에서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세계질서 수호 의지를 천명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하는 방식으로 푸틴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기선을 제압하지 못하도록 재를 뿌렸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키이우 시내를 거닐며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전쟁 발발) 1년이 지난 뒤 키이우는 건재하고 우크라이나도 건재하며 민주주의도 건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기다리던 러시아 매파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CNN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언론인 세르게이 모르단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바이든의 키이우 방문은 러시아에 대한 노골적 굴욕주기"라며 "경이로운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우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치르고 있는 성스러운 전쟁에 대한 주술도 애들 얘깃거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는 나토의 동부 최전선이라는 지정학적 의미가 있는 폴란드에서 하는 이번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전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주장을 특별히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의 지원을 촉구하며 부여하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실제 서방의 우크라이나전 개입 명분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세계대전 이후 자유 민주주의 득세와 함께 구축한 세계질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탈이 묵인되면서 그대로 붕괴 위기에 몰리는 사태를 우려한다.

서방은 그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키이우 방문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양자의 승리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이미 수십년 간 유지해온 세계질서가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의 도전을 받는 데 위기를 느꼈다.

대표적 권위주의 지도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무제한 협력체제'를 약속했다.

양국은 우크라이나전 이후에도 더 활발해진 교역을 토대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 서방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를 찾았을 때 시진핑 주석은 최고위 외교정책 관리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모스크바로 보냈다.

이를 두고 신냉전 본격화의 또다른 한 획을 긋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