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48시간 일거수일투족 생중계…WP "다시 주연으로"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세기의 재판'으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그간 갈구했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치열한 취재 경쟁 속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방송과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일단 '신 스틸러'로 화제의 중심에 서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를 도마 위에 올린 형사 재판이 대선 판도에 어떤 변수가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노 코멘트'를 고수하며 거리를 두려는 입장을 유지했다.

◇ '트럼프의 48시간' 생중계…WP "다시 주연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3일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자택을 떠나 4일 오후 뉴욕 맨해튼 형사 법정에 서기까지 약 48시간 동안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미국 주류 언론사들은 일제히 미 대통령 역사상 첫 피고인이 된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취재 역량을 총동원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숙소에서 법원까지 약 6㎞를 이동하는 동안, 미국의 주요 방송국은 헬리콥터를 띄워 세세한 움직임까지 실시간 중계했다.

트럼프 타워, 법원 앞 등에는 TV카메라와 취재진 등이 장사진을 이뤘다. CNN은 맨해튼 5번가에 중계 방송 세트를 설치했고 , 방송사마다 최고 인기 앵커가 투입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워싱턴포스트(WP)는 일찌감치 취재 경쟁에 가세한 매체이면서도 "이 모든 것이 역사적이긴 하지만, 가장 추악한 역사"라며 "이번 사건은 그 자체로 이런 모든 관심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는 결국 성인물 배우에게 불륜 입막음용 뒷돈을 주고, 기업 장부를 조작했다는 점이라는 지적이다.

WP는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는 정치인이다. (기소 탓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다시 쏟아졌다. 그가 언제나 바라왔던 24시간의 관심"이라고 분석했다.

◇ 트럼프 주먹 '불끈'…표정엔 '복잡한 심경'

뉴욕타임스(NYT)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런 미디어의 관심을 크게 즐기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때 전세계 언론사를 들썩이던 트럼프의 존재감은 2021년 퇴임 이후 의회난동 사태와 맞물리면서 순식간에 곤두박칠쳤고, 트윗 한줄로 세계 정세를 쥐락펴락하던 SNS 영향력도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날 '역사적 기소'의 중심 인물이 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주연'으로 발돋움했다고 WP는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주류 SNS에서 퇴출된 이후 자체적으로 만든 '트루스소셜'에도 방문자가 쇄도했다.

평소 미국발 방문 수가 20만건 정도에 불과하던 트루스소셜은 지난달 18일 '곧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게시글 이후 방문 수가 40만 건으로 급증했다. 그가 실제로 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도 트루스소셜의 방문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정과 언행에서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복잡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

적어도 외부에는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식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미 전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 재판을 받게 된 데 따른 적잖은 부담과 무관치 않다.

그는 이날 아침 숙소인 트럼프 타워를 출발하면서 지지자와 취재진을 향해 불끈 쥔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특유의 미소나 '엄지척'은 없었다.

법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분위기도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CNN은 피고인석의 트럼프의 모습을 전하면서 "엄중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분명히 심각한 표정"이라고 보도했다. NBC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얼굴에서 그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그가 법원에 입·퇴장하면서 소감 등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고, 주요 매체도 현장에 몰려들었으나 실제로 그는 법원 앞에서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평소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거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 '노 코멘트' 일관한 바이든…거리 유지한 채 '유능' 연출에 집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디어를 휩쓰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세기의 재판'과 관련해 거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전략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트럼프 기소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가 결정된 이후 취재진의 관련된 물음에도 "노 코멘트하겠습니다", "'트럼프 기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할 말이 전혀 없습니다", "트럼프와 관련해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등으로 극구 답을 회피했다.

바이든 대통령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한 마디라도 언급했다간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기소가 '정치적 마녀 사냥'이라고 주장한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 사안과 거리를 둔 채,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발언을 덧붙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참모를 지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트럼프 측은 백악관이 이 사안에 뛰어들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백악관이 반응을 내면 트럼프 측은 이 모든 것을 민주당의 정치적 음모로 보이게 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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