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생에 뿌려 부모 전화번호 알아내…신종 보이스피싱에 무게

학습 기능성 음료 '테스트베드' 대치동서 의심받지 않고 접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박규리 기자 =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은 마약이 급기야 다른 범죄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보이스피싱 또는 마약유통 조직이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배후를 규명·추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보이스피싱에 마약범죄 결합

7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체포된 일당 4명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 일대에서 학생들에게 필로폰 등 마약 성분이 든 음료를 '기억력 강화 음료'라고 속여 마시게 했다.

경찰이 주목하는 점은 일당이 마약 음료를 마신 학생들을 속여 받아낸 부모 전화번호로 "자녀가 마약을 복용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학교에 알리겠다"고 협박한 점이다.

경찰은 보이스피싱과 음료 등에 몰래 마약을 타 먹이는 이른바 '퐁당 마약'이 결합한 신종범죄로 보고 있다.

퐁당 마약은 통상 피해자를 서서히 중독시킨 뒤 마약을 계속 사도록 하는 수법인데 이번 사건은 마약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붙잡힌 일당이 경찰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음료인 줄 몰랐다.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진술한 점, 피해 부모들이 "협박 전화를 건 사람이 조선족 말투였다"고 신고한 점 등이 경찰의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 범행 장소·대상 특정…사전에 치밀하게 계획

경찰은 강남 학원가 등 부유층 밀집 지역의 학생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점도 눈여겨보고 있다.

범행 장소를 강남 대치동으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기존 보이스피싱 범죄는 휴대전화 번호를 대량으로 수집해 무작위로 범행 대상자를 고르는 반면 이번 마약 음료 사건에선 부유층이 많은 강남 지역을 '타깃'으로 특정했을 수 있다.

범인으로선 같은 범죄라면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 학원가가 학습 능력에 도움된다는 각종 기능성 음료의 '테스트 베드'라는 점도 범행 일당이 대치동을 노린 이유로 보인다.

기능성 음료 시음행사가 빈번하다보니 학생들이 별다른 의심없이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를 받아먹을 가능성이 커 범행 성공률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고려해 대치동 외에 다른 학원 밀집 장소를 특정해 추가 범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 마약범죄의 강력범죄화 조짐

이번 사건에서 보듯 이제 국내 마약 범죄가 단순 투약·유통에서 벗어나 다양한 강력범죄와 결합해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필로폰 1회 투약분(0.03g) 가격이 피자나 치킨 가격인 2만원대까지 내려갈 정도로 마약은 이제 국내에서도 미성년자도 흔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8천107명이었던 국내 마약류 사범 수는 지난해 1만2천387명까지 급증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이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마약 범죄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처럼 마약을 유통·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약을 수단 삼아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범죄를 찾는 데 혈안이다.

이에 발맞춰 기존 범죄 조직들도 마약을 활용한 새로운 범죄 시도에 적극적인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마약범죄와 다른 범죄의 결합이 가속화되면 국내서도 외국처럼 마약 이권을 두고 범죄조직간 강력범죄를 벌이는 것도 빈번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외국인 범죄조직이 국내에서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느는 등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외국인 마약류 사범 수는 2018년 596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1천757명에 달했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