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中의 적절조치 기다려"…정부, '외교적 기피인물' 지정은 검토 안해

중국은 "싱 대사 직무 화젯거리 되면 안 돼" 사실상 거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김효정 오수진 기자 = 정부가 한중관계를 뒤흔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회동 발언 논란 이후 중국 측의 수습 조치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모든 결과는 대사 본인의 책임"이라고 경고한 바 있는데, 이후 당분간은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13일 연합뉴스에 "일단 중국 측에 단호하게 경고했고 그다음에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고위 소식통은 싱 대사의 발언과 관련,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싱 대사가 외교사절의 기본 임무에 어긋나고 국내 정치개입 소지도 있는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사태 해결을 위한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 측이 이 문제를 숙고해보고 우리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적절한 조치의 주체가 중국 정부인가, 싱 대사인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중국 정부나 싱 대사를 지칭한 것은 아니고 중국 측의 전반적인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지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정 조처를 중국 측에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지는 결국 중국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싱 대사가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그동안 외교사절로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킨 만큼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여론에서는 싱 대사에 대한 외교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그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에서 확산하고 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9조에 따르면 외교사절이 주재하는 국가는 언제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외교사절이 기피인물이라고 파견국에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파견국은 해당 외교사절을 소환하거나 재외공관에서의 직무를 종료해야 한다. 기피인물로 지정된 인사는 통상 72시간 내 출국해야 한다.

197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발효 이후 한국 정부가 외교사절을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한 사례는 1998년 한러 외교관 맞추방 사건 당시 주한러시아 참사관 추방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싱 대사의 기피인물 지정을 검토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모든 결과는 대사 본인의 책임"이란 경고 자체가 다양한 옵션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의 '적절한 조치' 압박에 중국이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싱하이밍 대사가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 직무"라며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이 싱 대사에 대한 소환·교체 등 조치를 할 의사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싱 대사의 이번 발언 파장이 지속된다면 한중 양국이 최근 모색 중이던 고위급 교류 재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다음 달 초중반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 간 첫 대면 회담이 성사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정부는 ARF를 계기로 한 한중 외교장관회담 개최 여부는 기본적으로 이번 사안과 별개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은 중국 측의 적절한 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