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토사 쏟아져 들어와 숨져…주변엔 주인잃은 장난감 나뒹굴어

교량 끊기고 맨홀서 빗물 역류…영주시 직원 절반 500명 복구·피해 파악 전력

(영주=연합뉴스) 윤관식 황수빈 기자 = "산이 무너지면서 마을이 아비규환이 됐어요."

30일 오전 11시께 경북 영주시 상망동 주택 매몰 현장은 폭우와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토사가 휩쓸고 간 흔적으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는 이날 오전 4시 43분께 산사태가 발생해 14개월 여아가 쏟아져 내린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

구조작업이 마무리된 주택 주변에는 토사로 가득 찬 채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발자국만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주택 내부도 온통 흙으로 뒤덮여 처참했다.

집안 가득 토사가 쏟아진 가운데 곳곳에 어린아이를 키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난감과 교육 용품들은 주인을 잃은 채 토사 더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택 뒤편에는 산사태 당시 쏟아진 흙더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흙더미는 발이 쑥쑥 빠지는 진창상태여서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지만 흙탕물은 여전히 인근 도로로 흘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인근 주민 이정희(65)씨는 "새벽 5시에 소방차가 막 올라가서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봤더니 산은 무너져 있었고 아수라장, 아비규환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할머니가 아이를 업어 키웠다"면서 "얼마 전 그 집에서 돌잔치를 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주민 장성국(56)씨는 "내 집도 무너져서 주변 상황 살필 겨를도 없었다"며 "다 떠내려가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비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주택 주변으로도 많은 가구가 침수 피해를 봤다.

하수구가 막히면서 빗물이 흘러넘쳐 농작물 피해도 극심했다.

주민들은 몇 년 전에도 토사가 흘러내리는 일이 있었다며 '예견된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영주시 자연재난팀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곳은 주택 등록이 돼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주시 곳곳에서도 크고 작은 호우 피해가 발생했다.

영광여중 인근 마을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1동이 흙과 나무에 뒤덮였고, 맨홀에서 빗물이 역류하며 도로에 흘렀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교에 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버스를 타면 위험할 것 같아 택시를 탔다"며 "학교 건물에도 물이 조금씩 들어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 인근의 맨홀에서 빗물이 역류해 교내로 흘러넘쳤다"며 "교직원들이 직접 학교로 빗물과 토사가 들어오는 걸 막으며 학생들이 정상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도 호우 피해 최소화에 전력을 다했다.

영주시 전 직원의 절반인 500여명이 피해 현장을 다니며 막힌 배수구를 뚫는 등 복구작업과 피해 현황을 파악했다.

이재민도 19명 발생해 친척 집이나 인근 경로당으로 대피했다.

경로당으로 대피한 소옥자(80)씨는 "무지막지하게 비가 오니까 산사태가 날까 걱정돼서 어젯밤 12시에 경로당에 왔다"며 "아침에 가보니 다행히 집은 멀쩡했지만, 앞에 길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봉현면에서는 불어난 강물에 교량이 끊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영주동에서는 주택 배수구가 막혀 물이 역류해 고립된 70대 여성 2명이 요양보호사의 신고로 구조됐다.

경북 영주의 누적 강수량은 이날 오후 3시 10분 기준 207㎜이고, 매몰 사고가 발생한 인근은 339㎜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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