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서 다툰 지인에 참변…피고인 "만취해 기억 안 나" 부인

유족 "오빠 누가 빼앗았나" 엄벌 탄원…검찰, 무기징역 구형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혼자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또 아팠을까…오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시퍼런 칼날이 제 몸을 쑤시는 듯한 통증으로 밤잠을 설칩니다."

A씨가 오빠 B(60대)씨의 비보를 듣게 된 건 지난 5월 어느 봄날이었다.

포항, 인천, 수원, 춘천 등 흩어져 생계를 꾸려나가던 6남매였기에 연락이 뜸해도 서로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넷째 오빠인 B씨가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경찰로부터 전해 들었다.

경찰은 B씨가 수십 차례 흉기에 찔린 상처 탓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사건이 너무 참혹해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까지 했다.

'겁도 많은 오빠가 사고 순간 흉기를 든 이에게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먹고살기 바빠 좀 더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해져 A씨는 물론 온 가족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홀로 고향인 홍천에서 노모를 부양하며 살아온 탓에 가정도 꾸리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온갖 계약직에 공공근로까지 15년을 일하며 연금보험을 들고 꼬박꼬박 저축했다.

B씨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정리하면서 7월이면 연금 개시를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마음은 더 미어졌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법정에 선 가해자의 '뉘우침 없는 태도'는 가족들의 마음을 더 후벼팠다.

가해자 50대 김모씨는 "술 먹고 깨어보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며 "당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했다.

무죄 주장을 위해 국민참여재판까지 신청했다가 뒤늦게 철회한 것도 유족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죽은 오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켜주지 않는 것 같아 그저 분통스러울 뿐이었다.

1일 춘천지법 형사2부(이영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모씨의 살인 혐의 사건 결심공판에서 A씨는 "하필 딱 하루 쉬는 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참변을 당했다. 오빠가 열심히 준비한 인생의 일부는 누가 빼앗아 간 걸까요"라며 하소연했다.

그는 법정에서 "죽은 사람은 있는데 범행한 사람은 없어 억울하다고,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법의 존엄함을 보여달라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 엄벌에 처해달라"고 울먹였다.

A씨는 또 "사건 수사 당시 내막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조차 알려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힘들고 화가 나기도 했다"며 "법원에 엄벌 탄원서를 쓰려고 해도 '뭘 알아야 쓰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도 오빠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외롭고 심심하다고 전화가 올 것만 같다. 고운 정보단 미운 정이 많았던 오빠였지만, 그래서인지 더 미안함과 그리움이 가득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10년간 전자장치 부착 명령, 유족 접근 금지와 외출 제한, 보호관찰 5년도 내려달라고 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사건 발생 경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 각종 감정 결과, 참고인 등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사실이 명백하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행이 매우 잔인하고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진술로 범행을 부인하며 뉘우치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선고 공판은 오는 2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tae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