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가자 분쟁 탓 쟁탈전…공급정체 속 수요량 급증

방산업체 눈치싸움…"생산시설 늘렸다 전쟁 끝나면 어쩌나"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20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도 격화하면서 세계적으로 무기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무기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폭발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장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155㎜ 포탄의 가격은 1년 새 4배로 뛰어올랐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무기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20개월 넘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무기 업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생산량을 최대로 늘려 무기를 찍어내고 있지만, 실제 전장에서 필요한 탄약과 장비의 양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까지 격화하며 제한된 무기 재고와 공급망을 두고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나토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독일 등을 제외한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전체 방산 업계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무기의 양은 그대로인데 수요는 두 배로 뛰며 결과적으로 유럽 국가들에도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란 모르텐손 스웨덴 국방물자처장은 제한된 생산 역량에 따른 군사 자원 경쟁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유럽과 미국에서 생산 역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에 대한 필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들의 무기 재고가 바닥나고 있는 상황은 최근 스웨덴에서 열린 '나토 산업포럼'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제기됐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포럼에서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 산업체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충분한 유휴 생산능력이 없다며 "우리가 필요할 때 생산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이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토의 군사 고문인 롭 바우에르 제독은 이날 포럼에서 서방 국가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무기인 155㎜ 포탄의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한 발 당 2천100달러(약 283만원)였으나 최근 1년 사이 8천400달러(1천135만원)로 4배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유럽의 정치인들은 무기 업체들에 생산 속도와 양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업체들 입장에서는 언제 전쟁이 끝나고 무기 수요가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설비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이다.

핀란드의 무기 회사 패트리아의 에사 라우탈링코 대표는 대부분의 무기 회사들은 이미 가진 생산 설비 안에서 최대한 많은 양을 생산해내고 있다면서 다음 단계는 새로운 생산 설비를 짓는 투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기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설비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전쟁이 끝나면 무기 수요가 급감하는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라우탈링코 대표는 유럽 정부들이 업체들에 무기 계약을 맺기도 전에 투자 책임부터 지우려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우리는 장기적인 수요에 대한 전망이 없으면 그렇게(투자)할 수 없다. 이 산업은 소매업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바우에르 제독은 "(정부와 무기 업체) 양측 모두 상호 파괴적인 '목 조르기'를 완화하고 상대방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와 이스라엘 모두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 몇 달간 무기 회사들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 생산 계약을 맺으면서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서고 있다.

빌 라플란테 미 국방부 획득 담당 차관은 최근 유럽 국가들에 방산 업체들의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더 많은 계약을 맺으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전 세계적인 무기 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최대 포탄 생산 회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제이슨 에이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무기 수요에 더 큰 상승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wisef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