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유명인 극단 선택…"보도 책임감·소비자 자정작용 필요"

"비난 여론에 취약한 연예인…제재 사각지대 많아"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안정훈 이율립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아온 배우 이선균(48)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우리 사회에 무거운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가 하루 아침에 마약 등 스캔들에 연루된 사실 자체도 그렇거니와,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를 떠나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의사실이 무분별하게 공개되고 SNS 등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재생산되다가 결국 극단의 결말을 맞는 비극의 고리를 대중이 고스란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자극적 보도 경쟁과 SNS라는 미디어의 확산으로 이러한 극단적 '폭로' 양태가 과거보다 훨씬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 또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제재와 자정 움직임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씨의 마약 혐의는 경찰이 지난 10월 첩보를 토대로 기초 조사를 하는 내사 단계부터 이례적으로 외부에 유출됐다.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기생충'으로 연기 인생에 정점을 찍은 인기배우의 마약 연루 의혹은 즉시 언론과 온라인에 일파만파 퍼져 입방아에 올랐다.

특히 혐의 입증과는 관련 없는 사생활이 담긴 통화 녹취록이 일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자 이씨는 심리적 괴로움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숨지기 바로 전날에도 한 유튜브 채널은 '충격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사적인 녹취록을 보도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씨와 같은 시기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된 가수 지드래곤(35·본명 권지용)은 이달 14일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혐의를 벗었지만, 그 역시 두 달여 간 각종 루머와 비난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비난 여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미확인 정보로 구설에 올라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극단의 코너에 몰렸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故) 최진실 씨는 생전 '25억원 사채설' 지라시와 악플로 인해 지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설리)는 오랜 시간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세상을 떴다. 최근 같은 이유로 생을 마감한 운동선수와 인터넷 방송인도 여럿이다.

전문가들은 연예인 등 유명인은 자신과 관련한 보도나 루머 확산에 일반인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진 현재 미디어 상황이 루머나 무리한 사생활 공개를 부추겼다는 보는 시각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예인은 비연예인보다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쉽다"며 "실제 있었던 치부와 무관한 개인의 사생활이나 허위 정보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통되면 일평생이 부정당하는 심리적 압박감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방송문화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소비자와 미디어는 일종의 유희로 가십성 뉴스를 이용하지만, 개인의 평판이 중요한 직업을 가진 당사자가 느끼는 타격감은 매우 크다"고 짚었다.

개인을 사회적으로 공격하는 미디어 소비 행태를 막기 위해 사전적 제동 장치와 사후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 교수는 "범죄사실과 무관한 보도를 했던 언론사나 특정 유튜브 채널과 같은 유사 언론 등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해 책임감 있는 보도를 위한 표시석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동근 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연예인 신변잡기식으로 미확인 보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실질적·물리적으로 이를 제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처럼 수작업이 아닌 빅데이터 등을 도입해 제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와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등 다변화한 정보 유통 경로를 모두 제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소비자들의 자정 작용은 필수적이다.

곽 교수는 "시민들이 미디어나 SNS로 정보를 옮길 때 신중해야 한다"며 "선정적·말초적인 기사 소비를 지양하며 성숙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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