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2천명 배정…의사들 '격앙'에 대학측 조심스런 분위기속 환영

지자체장들은 기대감 표현…증원 '0명' 서울 지역 의대는 '당혹'

(전국종합=연합뉴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정부가 20일 전국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공식 발표하자 대학과 의사단체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대학들은 반기는 분위기 속에 후속 조치를 준비하는 모습이지만, 교원과 의사단체는 이번 발표가 일방적이라며 크게 반발하면서 대응책 논의에 들어갔다.

◇ 거점 국립대별 정원 최대 200명으로 늘어…"인프라 개선에 도움"

정부가 이날 서울을 제외한 경기·인천 지역과 전국 거점 국립대,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당 대학은 대체로 반색하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증원분 2천명 중 82%(1천639명)를 비수도권에, 나머지 18%(361명)를 경인 지역에 배분한다.

이에 따라 7개 거점국립대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나고 소규모 의대도 정원이 100명 수준으로 확대한다.

정원이 기존 4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난 울산대는 이날 정부 발표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의료 인프라 개선과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부속병원인 울산대병원, 협력병원인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과 함께 학생들을 앞으로 더 잘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신청한 증원 51명이 모두 반영된 동아대는 병원 의사 인력 운영에 여력이 생길 것이라는 입장이다.

동아대 관계자는 "1천개 병상과 심혈관질환센터, 응급의료센터 등 2개 권역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원이 49명에 불과해 전공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교육 여건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해 증원에 따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원이 80명 늘어난 충남 천안 단국대는 "의대 정원 증원 요청은 지역 의료 현안을 해결하면서 현재 교육·연구역량, 미래 투자 계획 등 합리적 근거에 의해 산출됐다"며 환영했다.

단국대 관계자는 "의대 신설 때부터 정원 100명 이상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갖췄으며, 추가적인 시설투자와 교육여건을 확충해 충남권역 유일 상급종합병원으로서 '글로벌 의과대학'으로 발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인재 선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준비해 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7년 전북대 군산병원을 완공하는데, 이 병원에만 최소 의사 120명이 필요하다"며 "의대 신입생 정원 증원은 의료 서비스 환경을 개선하는 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전북대 의대는 정원이 기존 142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난다.

25명 증원돼 정원이 150명이 된 조선대는 실험 실습실을 개조하고, 기자재를 확충하는 등 정원 증원에 대비할 계획이다.

일부 의대에선 교원과 갈등 상황을 고려해 즉각적인 입장 발표를 자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역 의료 서비스 확대, 의대 운영 효율성 개선 효과 등 증원을 반기고는 있지만, 반대 중인 교원들과 골이 깊어질 수 있어 반응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 지자체장들, 한목소리로 '환영'…"의료 접근성 향상 기대"

정원 확대 발표에 의대가 있는 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모두 시민들 의료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충북은 치료 가능 사망자 수 전국 1위,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전국 14위 등으로 전국 최하위의 의료수준을 가지고 있다"며 "중앙정부, 대학과 함께 의과대학의 차질 없는 교육과 실습이 이뤄지도록 행·재정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담화문을 내고 "지역 의대를 졸업하고 지역에 남는 비율은 82%에 이른다"며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필수 의료 분야 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민을 위한 필수 의료체계가 완성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정부의 신속한 의대 정원 배정은 국민 건강권 증진은 물론, 지방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관영 전북자치도지사는 "정부가 의대 2천명 증원분 중 비수도권 의대에 82%를 배정하면서 의사나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학이 교육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광역시 중 최하위이며, 전국 평균 3.2명 보다 크게 낮다"며 "전공의 여러분들은 이제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 "시설·예산 부족한데 대책 없이 추진…진짜 의료대란 일어날 것"

사직서 제출까지 결의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해온 교수 의사단체는 정부가 기존 안대로 2천명 증원을 확정하자 격양된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예산과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 수만 늘어나면 교육 현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기존(49명)보다 정원이 4배 이상 증가하며 전국에서 가장 크게 정원이 늘어난 충북대 의대 교수들은 즉각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회장은 "학생 수 50명을 기준으로 교육과정이 맞춰져 있는데 200명을 뽑게 되면 교육이 상당히 부실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4인 가족이 사는 32평 아파트에 17명을 집어넣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습용 시신, 강의실, 연구 예산 모든 게 부족한데 대책 없이 학생 수 가지고만 얘기를 하니까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대학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의료와 교육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와 교수의 의견을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증원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 전문가로서 봤을 때 이 정책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의학 교육과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대화의 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전 지역 의대 교수들도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구관우 건양대의료원 비대위원장은 "어제까지만 해도 사직서는 내더라도 환자 진료는 정상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반응이었는데, 정부 확정 발표 이후로 진료 축소까지 논의되는 등 강경 기조로 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316명 중 93%(294명)가 사직서 제출 등 적극적인 행동에 동의한 충남대 의대 비대위는 곧 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충남대 의대 한 교수는 "진짜 말 그대로 '의료대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외래며 수술이며 교수들이 다 커버했으나 사직까지 결의한 교수들의 울부짖음을 이렇게 저버렸는데 분위기가 강경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원광대 의대 교수들 이날 오후 5시께 비대위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사직서 제출 시기와 방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원광대 비대위 관계자는 "늘어난 150명을 대학이 수용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서남대 폐교 이후 15명 정도 의대 숫자가 증원됐는데, 그때 (양질의 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을 겪어봤다"고 말했다.

병원 현장에서는 전공의 복귀가 더욱 늦춰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광주 지역 한 3차 병원 교수는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커져 수도권 대형병원 교수들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임정혁 대전시의사회장은 "회원들 사이에서는 절망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분노가 이어지고 있다"며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곧 성명을 낼 예정인데, 그에 따라 행동 방침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 증원 '0명' 서울 지역 의대들 당혹

정부 발표에 경인 지역과 비수도권 의대만 포함되면서 '증원 논란'과는 별도로 서울 지역 의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는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정부 기조에 맞춰 의과학과를 신설하면서 정원을 48%가량 늘리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바 있다.

서울대는 지난 7일 정원을 기존 135명에서 200명으로 늘려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했으며, 증원 인원 65명 중 50명은 의과학과 신설에 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에 서울 지역 증원은 '0명'이 되면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다만, 서울대 측은 이번 배정 결과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의대 정원을 최소 30명에서 최대 50명 늘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경희대에서도 정부 발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총장들 입장에선 난처할 것"이라며 "(정부가) 대학들에 희망을 안겨줘서 대학 내 다른 구성원들의 반발이 있었는데도 증원 신청을 밀어붙인 곳들이 많았을 텐데 바보로 만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금 학생들은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거지 어디에 정원이 더 배정되느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며 "서울에 1명도 배정을 안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돌아올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교 관계자는 "공황 상태"라면서도 말을 아꼈다.

(계승현 김정진 안정훈 박주영 강태현 박성제 김솔 박세진 백나용 천경환 김용태 형민우 우영식 나보배 홍현기 김근주 기자)

cant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