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등에업고 분기 최대 실적…레거시 메모리 부진에도 AI 수요 견고
'팀 엔비디아' 하이닉스·TSMC 승승장구…삼성은 상대적 부진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에 반도체 시장에서 실적 양극화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SK하이닉스는 AI 칩 생태계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공급망에 일찌감치 합류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AI 붐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 SK하이닉스 영업익 7조원 돌파…삼성 DS는 4조원대 추정
SK하이닉스 연결 기준 3분기 영업이익이 7조3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24일 공시했다. 전 분기의 5조4천685억원보다 28.6% 늘어난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였던 6조8천억원대를 큰 폭으로 웃돌면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새로 썼다.
특히 이번 영업이익은 경쟁사이자 세계 메모리 1위 업체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추월했을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 DS부문을 앞선 것은 양측 모두 흑자를 낸 분기 기준으로 올해 1분기(SK하이닉스 2조8천860억원, 삼성전자 1조9천1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다.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9조1천억원인데, 이 중 DS부문 영업이익을 전 분기의 6조4천5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줄어든 4조원대 안팎으로 증권가에서는 추정한다.
SK하이닉스는 "수익성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판매가 늘며 D램 및 낸드 모두 평균판매단가(ASP)가 전 분기 대비 10%대 중반 올라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호실적 배경을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스마트폰과 PC 등 전방 정보기술(IT) 수요 회복이 지연되면서 최근 레거시(범용) 메모리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 같은 업황 둔화에도 SK하이닉스는 AI 붐에 수요가 폭증하는 고성능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주도권을 잡아 수익성 차별화와 실적 방어가 가능했다.
SK하이닉스는 AI 학습과 추론용으로 쓰이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오며 'HBM 강자' 입지를 굳혔다.
지난 3월 HBM 5세대인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한 데 이어 최근 12단 제품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해 공급을 앞두고 있다.
이의진 흥국증권 연구원은 "D램에서 HBM, DDR, LPDDR5 수요는 견고하나 B2C 수요와 일반 서버 수요가 부진한 상황"이라며 "SK하이닉스는 AI 중심의 고부가 수요가 증가하며 ASP가 이끄는 업사이클(호황기)임이 매 분기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SK하이닉스는 DDR5와 HBM 비중이 높아 업황 악화에 노출도가 낮으며, 4분기부터는 HBM3E 12단 제품이 실적이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AI 거대 물결…반도체 산업 부익부 빈익빈 심화"
SK하이닉스의 호실적으로 확인했듯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실적 향방은 AI가 가르고 있다.
특히 현재 AI 칩 수요를 독식하는 엔비디아의 공급망에 합류했는지가 관건이다.
엔비디아 AI 칩을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도 이번 3분기에 최대 실적을 썼다.
TSMC의 3분기 순이익은 3천252억6천만 대만달러(약 13조8천억원)로 작년 동기 보다 54.2% 급증했으며, 시장 전망치였던 3천억 대만달러도 뛰어넘었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AI 수요는 진짜(real)"라며 "올해 하반기 내내 고객들의 강력한 AI 수요를 지속해서 관찰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도체 수요가 AI로 쏠리고 기존 IT 수요 침체는 길어지면서 AI 반도체에서 주도권을 놓친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삼성전자다. 수요가 둔화하는 기존 레거시 D램이 주력이고 수요가 급증하는 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후발주자가 됐다.
이번 3분기 실적 역시 기대 이하였다. 메모리에서는 HBM이 아직 비중이 크지 않아 유의미한 실적 반등을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과 PC 판매 부진으로 메모리 모듈 업체들의 재고 수준이 12∼16주로 늘며 메모리 출하량과 가격 상승은 기대에 못 미쳤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서 공격적으로 HBM 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엔비디아 공급망에 들어가지 못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3E 8단과 12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퀄(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나 통과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잠정실적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설명 자료를 내고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는 TSMC와 직접 경쟁하는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실적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설계)를 포함하는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은 수주 부진과 낮은 가동률 등에 이번 3분기에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AI라는 거대한 물결에 잘 올라탄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운명이 갈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