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 대선 후 인플레 악화 가능성 경고
"관세 부과·이민자 추방 등 트럼프 공약, 인플레 더 유발"
다음 달 미국 대선 이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대규모 재정 지출을 단행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공약이 물가 상승을 촉발할 위험이 더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2년 반 동안 벌인 '치열한 싸움'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미 대선이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은 그간 금리 상승을 비롯해 공급망의 회복, 노동자의 유입 등에 힘입어 완화됐다.
하지만 내년에도 대출 비용과 물가 상승세가 계속 완화될지는 트럼프나 해리스의 정책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은 인플레이션의 추가 완화를 막는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특히 경제학자들과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내놓은 공약이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지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수입품에 대한 전면적인 관세 부과, 이주 노동자 추방,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통한 금리 인하 등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트럼프의 공약으로 꼽힌다.
재계와 경제학계 인사들은 트럼프가 수입품에 부과할 고율 관세의 비용을 미 소비자들이 부담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필립 다니엘 오토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를 하면서 "우리는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6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또 피터슨 연구소의 연구 결과, 이주 노동자 추방으로 경제 생산량이 많이 감소하는 동시에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할 수 있는 근로자가 줄어들면 기업은 임금과 가격을 인상하거나 이익을 줄여야 한다.
트럼프의 공약은 물가상승률을 낮게 관리해야 하는 연준과의 새로운 싸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연준의 입장에서는 관세 인상의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복잡하고 불편할 수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요인으로 인해 금리 인하 계획을 늦추거나 심지어 중단할 수도 있다.
연준은 물가가 안정되자 지난달 2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보수 성향의 맨해튼 연구소에서 일하는 브라이언 리들 교수는 "모든 것을 종합하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더 많이 움직이고 있다"면서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악화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수년간 물가 압력이 낮고 안정적이었던 첫 번째 임기와는 훨씬 다른 경제적 배경 아래 펼쳐질 것으로 WSJ은 전망했다.
채권 수익률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새 임기가 더 많은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최근 상승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당시 백악관 입법 담당 국장을 지낸 마크 쇼트는 바뀐 경제환경과 트럼프가 제안한 광범위한 정책을 고려하면 트럼프 재집권 시 인플레이션 위협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해리스는 주택 건설 촉진, 가격 폭리 단속,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한 세금 공제 확대 등을 통해 생활비 위기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해리스는 이런 공약 실천에 필요한 재원을 세금이나 기타 수입 증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적자를 대폭 줄이는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리들 교수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인플레이션이 크게 급등하지는 않겠지만, 다소 끈질기고 완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봤다.
(서울=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