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충격에 대형 참사로 우울감 호소…전문가들 "애도하되 일상 지켜야"

"사고 영상을 본 뒤로 제가 비행기에 타고 있던 희생자가 된 것처럼 상상하게 돼 힘들어요. 눈을 감으면 폭발 영상이 떠올라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틀째를 맞은 30일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 한편으로 참담한 잔상에 불안해하는 등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가족에게 사고 당시 영상을 공유받았다는 직장인 이모(27)씨는 전날 밤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안타까운 사고 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씨는 "소셜미디어(SNS)에도 사고 영상이 반복해 뜨길래 '관심 없음'을 누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방모(60)씨는 "사고 영상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이 다시 생각났다"며 "비상계엄 이후 정치, 경제가 혼란하면서 웃을 일도 없는데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충격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 참사로 우울감이 겹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시민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SNS에는 "'내란성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대형 참사까지 겹쳤다. 잔인한 12월이다", "아무 데나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등 게시글이 잇따랐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반복되는 대형 참사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사고 영상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한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는 "뉴스 영상이길래 멍하니 보고 있다가 당시 실제 영상 같아서 급하게 껐다"며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는 현장의 모습이 다수에게 트라우마로 남는 일이 가까운 과거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이런다"며 비판했다.

김민영(35)씨는 "출산을 앞두고 있어 육아 정보 등을 검색하느라 인터넷을 멀리할 수 없는데 정보를 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행기 폭발 영상이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있다"며 "언론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영상을 공유하지 않는 등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사회 전반에 집단적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며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하는 행위를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반복해서 사고 당시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를 두고 사람들이 마치 슬픔을 나누고 애도한다고 생각하지만, 극도의 공포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는 오히려 이성적 판단과 정상적인 회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나 지역사회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공간들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좋지 않은 뉴스를 잇달아 접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기력함과 피로감이 계속 만들어지는 상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며 "희생자,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되 일상생활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최윤선 기자2yulri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