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식에 후드티와 반바지 차림 참석 연방 상원의원
[올드&뉴]
2003년 유시민'빽바지'입고 국회 등장에 발칵
정의당 류호정 분홍색 원피스 "품위없다" 힐난
'복장=인격'의 사회 분위기 바뀌려면 한참 멀어
민주당 소속 존 페터먼 상원의원(56·펜실베이니아주)이 20일 실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후드티와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 관심을 끈다. 평소 공식 석상에서도 '동네 아저씨' 패션을 고수하는 그 이지만, 자리가 자리인 탓에 '저래도 문제없을까'하는 걱정과 함께 '바로 저런 게 미국의 힘'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페터먼은 파격적 옷차림에서 보듯 민주당 당론에 때때로 반기를 드는 이단아로 유명하다. 근래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인수위를 차린 트럼프를 방문하고서 국경 정책에 협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년엔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직에 도전장을 던진 한국계 앤디 김(뉴저지주) 하원의원을 공개 지지하고 나서 논란이 됐다. 상원의원이 동료 의원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라서다. 페터먼은 김 의원에 대해 "하원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의정활동을 한 분"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페터먼은 반바지 패션으로 지구촌에 이름을 알렸지만, 미국에선 대선 패배를 부정선거 탓으로 돌리는 트럼프를 인터넷 트롤(troll)에 비유해 유명해졌다. 트롤은 근거 없는 주장을 늘어놓거나 괴담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로, 우리말로 옮기면 어그로(aggro), 주작(做作), 입벌구(입만 벌리면 구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페터먼의 반바지 차림을 보면 유시민의 '빽바지' 소동을 떠올리게 한다. 2003년 4월 흰색 면바지에 라운드 티셔츠와 남색 재킷을 걸치고 국회의원 취임 선서를 하려던 유시민은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소풍 왔냐" "예의가 없네" 등 야유를 받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는 결국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의원 선서를 해야 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의회는 적어도 옷차림에 있어선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정의당 류호정 전 의원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본회의장에 들어왔다가 "품위가 없다"는 소리를 들은 게 최근 일이다.
정치권 취재 기자에 대한 복장 규제도 풀리지 않고 있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운동화를 신을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반바지와 슬리퍼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윤 대통령 출근길 문답이 진행된 기자실 앞 복도에 한 방송기자가 슬리퍼 차림으로 나왔다가 '기레기' '싸가지' '쓰레빠' 등 온갖 험담과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우리 대통령 취임식에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패가망신까진 아니더라도 사람이 덜됐다는 손가락질을 감당해야 할 수 있다. 옷차림을 인격의 거울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려면 한참 멀었다. 한국의 페터먼이 계속 나와주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