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부진 등으로 전방위 위기…"100% 경영 전념 여건 마련"

글로벌 경영 행보 확대 기대…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논의 가능성도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햇수로 10년째 겪고 있던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됐다.

이에 따라 이 회장도 그간의 '경영 족쇄'에서 벗어나 삼성의 위기 극복과 '세상에 없던' 신사업 발굴을 비롯한 미래 준비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3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이 회장이 '뉴삼성'을 본격 가동하며 삼성전자의 위기 극복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해 11월 25일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말 그대로 전방위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주력인 반도체 사업의 부진이 뼈아프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쓰며 고공행진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범용(레거시) 메모리의 부진과 HBM 납품 지연 등으로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5조1천억원으로, SK하이닉스(23조4천673억원)에 크게 못 미쳤고,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는 가전과 스마트폰까지 포함한 전사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다. 파운드리 사업은 여전히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첫 노조 파업을 겪은 데 이어 노사 갈등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부과와 반도체 보조금 지출 중단 움직임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도 커진 상태다.

그동안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과감한 투자 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던 만큼 향후 대규모 투자와 혁신으로 삼성이 재도약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번 무죄 선고로 사실상 이 회장이 경영에만 100%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삼성의 초격차를 이끌며 경영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남아 있어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 회장이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해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간 재판 준비와 출석 등으로 해외 경영 행보에도 일정 부분 제약이 있었던 만큼 향후 경영 보폭을 넓히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에 방한하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빅테크 CEO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 역량을 총동원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몰두하는 동안 이 회장은 재판 준비 등에 상당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 회장은 2021년 4월부터 총 107회 열린 1심 재판(선고기일 포함)에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 96번 출석했다. 이후 진행된 2심 재판에도 이날을 포함해 총 6회 출석했다.

통상 설·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 사업장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격려해왔지만, 2심 선고를 앞둔 이번 설 연휴에는 해외 출장 대신 국내에 머무르며 차분히 경영 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재판 준비 등으로 제약이 있었던 만큼 급변하는 글로벌 IT 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경영 보폭을 더 넓히며 신사업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발굴하겠다며 2023년 말 신설한 미래사업기획단은 1년 만에 3번째 수장을 맞이하는 등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이 회장이 그간 강조해 온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이 회장이 '세상에 없는 기술' 화두를 던졌는데 그 제품이 아마 올 하반기부터 시작해 내년도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사업부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재계 안팎의 기대만큼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못한 배경 중 하나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꼽히기도 했던 만큼 향후 과감한 쇄신 인사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이에 따른 책임경영 강화도 기대하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논의도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복합 위기 타개 방안 중 하나로 삼성글로벌리서치 내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했다. 재계에서는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 기능이 2017년 2월 미전실 해체 이후 약 7년9개월 만에 부활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미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과거로의 회귀 비판 등을 의식해 추진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항소심 무죄로 이 같은 부담을 덜어낸 만큼 부활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hanajj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