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加·멕에 결국 25% 관세…우크라 군사지원 끊고 러 밀착
전후체제 흔들…동맹균열·자유무역 붕괴·권위주의 득세·군비경쟁 부채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묻지마식 '관세폭탄'과 거래주의에 기반한 '안보장사' 때문에 국제질서가 혼돈기를 맞고 있다.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통상체계를 흔드는 이런 공세에 규범파괴를 동반한 통상마찰, 권위주의 득세, 군비경쟁 등 심한 파장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3일(현지시간) 이 시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무역전쟁은 그 심도와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동맹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가 4일부터 시행된다고 거듭 확인했고,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협상의 여지도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캐나다-멕시코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무관세 무역을 해왔던 캐나다, 멕시코 입장에서는 통상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업종별 관세에 이어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 관세도 다음 달 2일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으로, 유럽과 같은 오랜 동맹과의 마찰도 불사하는 모양새다.
동맹을 적대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한 자유주의 동맹의 약화를 부를 위험을 내포한다.
25% 관세 부과를 통보받은 유럽연합(EU)은 이미 역내 통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이다.
미국과 주요 동맹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놓고 보복과 재보복을 거듭하면서 분쟁을 키울 경우 동맹 관계가 예전처럼 유지되기 힘들다.
전 세계 무역 질서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관세 폭탄은 30년간 유지되어 온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 규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통상 질서의 급변을 초래할 위험까지 있다.
미국의 이런 관세 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수준을 넘어 타국의 주권을 훼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심을 산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뿐만 아니라 이민 규제, 타국 영토의 합병 등에도 관세를 지렛대로 거론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복관세를 부르고 보호무역 기조 확산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가간, 권역간 무역 충돌이 도미노처럼 번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노골화하고 있는 안보장사도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원조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 지분 50%를 요구했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실제로 지원한 것보다도 훨씬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데다 우크라이나 후세대의 미래를 저당잡는 약탈적 협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을 안전보장을 원하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요청은 무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종전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시아 기조는 우크라이나에 굴복을 요구하는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종전구상과 관련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이후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전면 중지했다.
군사원조의 재개 조건은 '평화에 대한 성실한 약속'을 증명했다고 자신이 판단하는 경우로 자신의 종전구상을 받아들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대해서는 수호 의지를 일부 밝혔는데, 대만 반도체업체 TSMC가 이날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45조9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뒤였다.
얻을 것이 없으면 동맹도 무시할 수 있고 얻을 것이 있으면 침략자와도 거래할 수 있다는 트럼프식 외교 정책에 유럽 등 우방은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러시아 등 미국의 동맹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환호할 상황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득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간판 스트롱맨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고무적으로 보고 연일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나토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의심하게 된 유럽의 지도자들은 별도의 안보 협정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러시아와 분쟁 때 미국이 발을 뺄 가능성이 커지자 홀로서기에 나서 독자적인 핵우산을 구축하겠다는 논의까지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체결한 구속력 있는 안보 협정에 의존해 온 일본과 한국, 중국의 위협을 미국의 안보 우산으로 대응해보려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각자도생을 위한 군비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withwi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