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전 같은날 닷컴버블 고점 찍고 폭락
'버블붕괴 2.0' 우려 속 "그때와 정확히 '평행'은 아냐"
랠리를 펼쳤던 미국 증시가 10일(현지시간) 큰 폭의 조정을 받으면서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고 있다. 25년 전 이날 미국 주가지수가 고점을 찍은 뒤 추세가 꺾였던 점도 주목받고 있다.
이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727.90포인트(-4.00%) 급락한 17,468.33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기인 2022년 9월 13일(-5.16%)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하락률이다.
주가가 고점 대비 10% 이상 떨어지면 기술적 조정으로 보는데 나스닥은 이미 지난주 조정 국면에 진입한 상태다. 지난달 19일 고점 대비 하락률은 12.9%다.
이날 테슬라 주가가 15.43% 내린 것을 비롯해 애플(-4.85%), 엔비디아(-5.07%), 메타(-4.42%), 마이크로소프트(-3.34%), 알파벳(-4.49%) 등 그동안 강세장을 주도했던 '매그니피센트7'의 주가 하락이 두드러졌다.
공교롭게도 나스닥은 종가 기준 2000년 3월 10일 5,048.62로 닷컴 버블 시기 고점을 찍고 하락 전환, 그해 5월 23일까지 약 37% 떨어진 바 있다.
지수는 이후에도 계속 흘러내려 2002년 10월에는 1,114.11까지 찍었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약 78%나 됐다.
당시에는 1998년만 해도 1,400대였던 나스닥 지수가 급등하면서 비이성적 과열 랠리에서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포모'(FOMO) 심리 등이 시장을 지배했고, 추세 전환을 예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버블 상황에서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가 제 기능을 못 했고 악재도 곧바로 잊혀졌다. 시스코시스템즈는 기업 가치가 매출의 38배까지 뛰어오르면서 한때 시가총액 세계 1위를 찍기도 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스코시스템즈가 현재의 인공지능(AI) 붐 대장주 엔비디아에 비견된다면서, 지난해 엔비디아 시총이 매출의 56배였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지금이 닷컴 붕괴 2.0인가' 제하 칼럼을 통해 돌이켜 보면 닷컴버블 당시 투자자들이 맹목적 탐욕 때문에 이익도 나지 않는 인터넷 기업들에 투자한 것 같지만 당시 분위기상으로는 판단이 쉽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3월 당시 분위기를 보면 증시가 언제 꺾일지 정확한 시점을 예상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것이다. 당시 보도를 보면 나스닥이 하락을 시작한 뒤 5주 뒤에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FT는 닷컴 버블 당시와 지금 상황을 정확히 '평행'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신생 기업들이 주도한 닷컴 버블과 달리 지금은 수익을 내는 빅테크들이 증시를 주도하고 있다고 짚었다.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증시 붕괴를 예측했던 금융 전문기자 짐 그랜트는 "어떤 것들은 변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버블의 모든 신호가 우리 앞에 있다"면서도 "패턴은 비슷하지만 타이밍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미국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고, 소비자 신뢰나 제조업 주문 등 경제 지표에 대해서도 걱정이 나온다는 점이다.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미국 고용시장도 닷컴버블 당시와 비슷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bs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