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가 가장 힘들어" "물 뿌리다 산비탈서 넘어지고 구르는 일 일상"
의성 현장 파견된 영천진화대 평균 65세…보호장구 등 안전대책 열악
산불 전문예방진화대 대원들이 나흘째 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험준한 산악지형을 넘나들며 진화 작업을 이어갔다.
25일 오후 경북 의성군 옥산면 실업1리 노인회관.
노인회관 앞 정자에는 영천시 소속 진화대원들이 오전 작업을 마치고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다.
대원들의 옷은 흙먼지와 그을음으로 뒤덮여있었다.
나흘째 이어진 산불에 대원들의 표정에는 피로감이 묻어나 보였다.
대원들은 한번 근무에 투입하면 정해진 휴식 시간 없이 20시간씩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60대 대원 이모씨는 "연기가 가장 힘들다"며 보급받은 마스크(KF94)를 들어 보였다.
그는 "산에 올라가면 숨이 헐떡거리는 데 연기를 마시면 더 힘들다"며 "마스크는 금방 땀범벅이 돼 헐렁해져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65세.
험준한 산악지형은 이들을 더 빨리 지치게 만든다고 한다.
한 대원은 "산비탈에서 넘어졌다"며 엉망이 된 바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대원은 "500m 물 호스를 두 개 다 사용한 적도 있다"며 "수압이 세기 때문에 물을 뿌리다가 산비탈에 넘어지고 구르는 일이 잦다"고 했다.
산불이 나흘째 강풍을 타고 확산하면서 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정병호(57) 진화대 반장은 전날 오후 단촌면 상화리 야산에서 갑작스러운 강풍에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고 했다.
그는 "200m 정도 산에 올라갔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불이 소나무를 타고 번졌다"며 "대원들이랑 급하게 빠져나온다고 산에서 구르고 넘어지고 난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안 있다가 온 산에 불이 붙었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꼼짝없이 죽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날 오후 안사면 중하리 야산에서는 영주시 산불 진화대원들이 한때 고립되는 상황도 벌어졌었다. 이들은 다행히 무사한 상태로 발견됐다.
경북 의성 산불은 지난 22일 발생해 나흘째 꺼지지 않고 있다. 진화율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54%이며 산불영향구역은 1만2천699㏊다.
(의성=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hs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