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산불 이재민 "전 재산인 집도 잃고 초라해진 스스로가 싫어" 눈물

"눈만 감으면 벌건 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게 눈앞에 아른거려요. 빨리 우리 집 천장 아래서 잠들고 싶은데…."

엿새째 산불이 잦아들고 있지 않은 27일.

경북 의성군 의성읍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윤옥넉(85)씨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같이 말했다.

윤씨는 산불이 시작됐던 지난 25일 오후, 집너머 산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봤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이웃들과 군청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일단 집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윤씨는 양팔을 쭉 뻗으면서 "이만큼이나 규모가 큰 불길은 처음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바람을 타고 불이 산에서 집 근처 나무로 붙었는데, 그 기세가 너무 무서웠다"며 "타버린 산에 다녀온 이웃들 말로는 흙이 다 부슬부슬하다고 한다. 여름에 산사태라도 나서 마을이 쑥대밭이 돼버리는 건 아닐까 싶다"며 걱정했다.

불을 피해 나온 이재민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당시 느꼈던 공포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의성체육관에 머무르고 있는 김모(77)씨도 "아직도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화재로 집을 잃었다.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15년간 혼자서 살아온, 그 한평생의 역사가 담긴 집이었다.

어머니의 집이 다 타버렸다는 뉴스를 본 뒤 김씨의 아들은 서울에서 의성으로 한달음에 내려왔다고 한다. 함께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김씨는 거절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 여태껏 자식들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집도 잃고 자식들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마을회관에서 머무를까도 고민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집을 잃은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이기 싫어 일찌감치 생각에서 지워버렸다.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 봉사나 밥차 봉사를 나갔는데, 상황도 이렇고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 이번 주엔 가지 않았다"며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의성체육관 임시대피소에서 상담 지원을 하는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지사 성철운 활동가는 "집을 잃은 분들 중에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대피 당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성 활동가는 "당시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죽음에도 애도가 필요하듯 갑작스러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익숙한 이웃들과 함께 대피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호흡법 등을 안내하면서 최대한 안정을 찾게끔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성=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war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