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에 뇌까지 적출, 훼손상태 심각…부검서 사인검증 피하려는 의도 추정

우크라 검찰 '전쟁범죄' 수사 착수…서방 외신들 합동 탐사보도로 전말 알려져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사자 시신 757구를 송환했다. 송환자 중 마지막 757번째 시신은 다른 시신들보다 유독 작고 가벼웠다. 인식표에는 "이름 미상, 남성, 관상동맥에 심한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인식표 기재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시신의 정체는 우크라이나의 여성 언론인 빅토리야 로시나였다.

시신은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발끝에는 전기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화상이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고 머리와 둔부에는 폭행의 흔적 같은 찰과상이 남아 있었다. 턱 아래 목뿔뼈(설골)도 부러져 있었는데 이는 목 졸림 피해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뇌와 두 안구도 모두 사라진 채였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로시나 기자의 장기가 일부 사라진 탓에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로시나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어떤 불법 고문 행위를 저지르는지 취재하려다가 러시아군에 붙잡혀 이런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내용은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 우크라이나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등의 합동 탐사보도로 29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이 내용은 각 외신과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포비든스토리즈'에 공개됐다.

이들의 보도에 따르면 로시나 기자가 러시아군에 붙잡힌 것은 2023년 8월께로 추정된다.

그는 앞서서도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소속 기자로 이미 몇 차례 잠입 취재에 성공해 러시아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그 위험성 때문에 러시아군 점령지역으로 잠입하는 취재기자는 매우 드물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로시나는 이번에도 러시아 점령지 자포리자 인근 지하시설에 잠입하려 했지만 결국 검거돼 러시아의 구금 시설로 끌려간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아무런 혐의도 없이 구금당했고 변호사의 조력도 받지 못했다. 겨우 바깥세상과 소통하게 된 것은 붙잡힌 지 약 1년 만에 이뤄진 부모님과의 통화였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로시나 기자는 구금시설에서 투여받은 정체불명의 약물의 영향으로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러시아 당국이 로시나의 사망 사실을 우크라이나 측에 통보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사망 당시 28세로, 러시아에 붙잡힌 채로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언론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로시나 기자가 구금시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러시아 당국의 공식 사망 통보까지는 몇 주간의 공백이 있다. 이듬해 2월 시신을 돌려받기까지도 4개월이 더 소요됐다.

시신 곳곳에 남겨진 상처들로 고문 피해의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우크라이나 검찰도, 우크라이나 내외의 언론들도 아직 로시나 기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로시나 기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기 위한 전쟁범죄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이날 보도와 관련해 "러시아가 납치한 민간인 인질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더 큰 관심과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