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유학에 신병 교육도 못 받고 경계근무 투입돼 적응 어려움 겪어

사소한 실수에도 "죽인다" 협박하고 어눌한 말투 따라 하며 조롱까지

선임병·부사관 등 3명 중 2명 법정구속…법원 "심각한 인권침해" 질타

2022년 11월 육군 12사단 최전방 GOP(일반전초)에서 집단 괴롭힘 끝에 이등병 김상현 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드러난 부대원들이 단죄받았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며 유가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던 피고인 3명 중 2명은 결국 실형을 선고받고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재판부는 '군대문화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피고인들을 향해 부대 내 괴롭힘이 인권을 침해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것은 상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침을 가했다.

춘천지법 형사1단독 송종환 부장판사는 30일 초병협박 혐의로 기소된 김모(23)씨에게 징역 6개월을, 모욕 혐의로 기소된 민모(25)씨에게 징역 4개월을, 강요와 협박 혐의로 기소된 송모(23)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 이병의 최고 선임병이었던 상황병 김씨는 2022년 11월 28일 오후 8시 7분께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인 김 이병에게 전화해 수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김씨는 "막사 와서 이야기하자, 할 말을 생각해와라, 죄송합니다 하면 각오해라"라며 협박했다.

안타깝게도 김 이병은 김씨의 전화를 받은 지 약 40분 만에 갖고 있던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해 9월 입대해 10월 말 GOP 부대에 전입한 지 한 달여만이었다.

김 이병의 죽음으로 부대 내 괴롭힘이 만연해있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당시 분대장을 맡았던 하사 민씨는 2022년 11월 14일 소초 상황실에서 동료 병사들이 있는 가운데 유명 웹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민폐 캐릭터'가 김 이병과 비슷하다며 비하하다가, 김 이병의 말투를 조롱하듯이 따라 하며 모욕했다.

오랜 기간 중국에서 유학해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김 이병을 조롱한 것이다.

선임병이었던 송씨는 김 이병이 GOP 근무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한 점을 질타하며 괴롭힘을 일삼았다.

33소초의 이름을 딴 '33노트'에는 GOP 경계 작전, 주야간 작전 현황 보고, 근무, 상황 조치 등이 담겨있었는데 김 이병이 이를 충분히 암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험 봐서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동기들 집합"이라며 겁을 먹은 김 이병에게 암기를 강요했다.

오랜 중국 유학 생활에다 복무 당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경계 태세가 격상됨에 따라 충분한 신병 교육 기간 없이 바로 경계근무에 투입된 김 이병으로서는 GOP 근무 내용을 숙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에도 배려는 없었다.

김 이병은 또 다른 선임병의 지시로 근무 중 실수를 '실수 노트'에다 적어 선임병들에게 검사받기도 했는데 송씨는 김 이병이 같은 실수를 썼다는 이유로 "똑같은 거 쓰면 너 진짜 죽어"라고 협박했다.

훈련 뒤 자율적으로 쓰는 노트 내용도 꼬투리 잡으며 "너 앞으로 출동할 때 제일 앞에서 뛰고, 쳐지면 뒤에서 총을 쏴버린다. 나보다 느리면 총으로 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1년여 만에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김 이병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했더라도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한 것으로 죄가 되지 않으며 군대문화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송 부장판사는 김 이병과 함께 근무했던 부대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피고인들 주장을 배척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김씨의 혐의에 대해서는 김 이병이 동기들에게 평소 가장 무서워하는 선임병으로 김씨를 언급했던 점, 민씨의 성대모사 행위는 주변에서도 놀림으로 인식했던 점, 송씨의 행위는 병사 간에는 명령이나 지시할 수 없는 부대관리훈령을 무시하고 이뤄진 헌법상 기본권 침해행위인 점 등을 유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송 부장판사는 양형 이유에 대해 "심리부검 의견서에 의하면 김 이병의 전입 이후 부대 내 다양하게 나타난 특성들이 긴밀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운을 뗐다.

이어 "물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교육 없이 경계근무에 투입된 군대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따뜻하게 피해자를 품지 못한 간부와 선임의 태도도 절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질타했다.

송 부장판사는 "GOP 부대와 같이 폐쇄적인 군부대에서는 인권 침해적인 사고 구제가 신속히 이뤄지는 게 요원할 수도 있다"며 "민씨가 부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적극적인 모욕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고 꾸짖었다.

송 부장판사는 "부대 내 괴롭힘이 인권을 침해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 따져보지 않아도 경험칙으로 충분히 입증된다"며 "징병제에 의해 갓 입대한 병사로서는 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주장은 '범죄행위가 군대문화로 설명가능하다'는 취지로 읽히는데, 피해자의 시각에서도 사건을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가 불가하다. 유무죄 다툼을 떠나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며 김씨와 민씨를 법정에서 구속하고, 송씨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하되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을 했다.

다만 민씨가 총기사고가 났을 당시 이를 '오발사고'로 거짓 보고했다는 혐의(허위보고)에 대해서는 허위보고가 존재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민씨가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내렸다.

군인권센터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초범이란 이유만으로 너무 낮은 형을 선고한 것은 문제"라며 "재판부에 반성 의사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송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민씨의 허위보고 혐의 무죄에 관해 "군검찰과 군사경찰의 수사 미진으로 증거가 부족해 무죄가 내려진 것"이라며 "윗선 보호를 위한 군의 부실 수사 책임을 묻고 허위보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conan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