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외교문법 깬 한미정상회담…'트럼프 맞춤형' 먹혔다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라는 글로벌 지정학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한국이 택할 외교안보 노선을 보여준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번 방미를 통해 미국 일각에서 우려하던 '친중 노선'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과 관련해 "한국이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안미경중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줄임말로, 문재인 정부 시기 한국의 이런 노선에 대한 미국 각계의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현 정세를 진단하며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기 전에는 안보와 경제를 일정 정도 분리해서 운신할 여지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구분이 어려워졌으며 한국은 미국의 중국 견제라는 전제 속에서 안보와 경제 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일본을 먼저 들렀던 선택 역시 한국 외교의 방향성을 대외적으로 잘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친중뿐 아니라 '반일' 이미지도 있었던 이 대통령이 국내 지지층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지적을 당할 각오도 했다"며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은 미국이 원하는 '동북아에서의 한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뵙기 전에 일본과 미리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 일본, 후 미국' 방문이 미국이 원하는 동북아 한미일 협력 구도를 강화하기 위함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노선은 한미정상회담의 원활한 진행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담이 열리기 전에는 미국이 한국을 향해 대중 견제 노선 동참, 국방비 인상, 통상 이슈 등을 제기하며 이른바 트럼프식의 거친 압박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다수였다.
그러나 회담 현장에서 양측은 동맹 현대화라는 큰 틀의 방향성 정도만 논했을 뿐 가령 '양안 관계 유사시 한국의 입장 및 행동'과 같은 민감한 주제는 논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과 다르게 "(중국을 파괴할 수 있는) 카드들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내놨다.
정상회담 이후 CSIS 강연에서 이 대통령이 안미경중을 취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흐름을 고려하면 양측은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대중 견제의 기본 토대가 확인된 이상 구태여 한미 회담에서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다만 한미 간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등도 정상 간 논의에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과제에 포함되는 만큼 회담 후 다양한 차원의 실무 협상이 이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은 전통적 외교 문법을 탈피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리더를 위한 '맞춤형' 전술이 통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의 주요 발언으로 꼽히는 '피스메이커'와 '페이스메이커', '북한 트럼프 타워에서의 골프'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인정 욕구와 사업가 기질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되 통상적인 외교적 수사들과는 거리가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여느 정상회담에서 나올 얘기는 아니고, 상대가 트럼프 대통령이니까 하는 것"이라며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모아서 가지고 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김지연 기자 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