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기발함으로 녹인 휴머니즘, 미국에서도 통했다”
[뉴스화제]
'어쩌면 해피엔딩' 작품상 등 석권
각본·작사 박천휴, 韓국적 첫 수상
"버려진 로봇의 사랑 스토리에 매료"
한국의 순수 창작 뮤지컬 릫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결국 일을 냈다. 미국 연극·뮤지컬 부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석권했다.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국내 초연의 토종 뮤지컬이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 ▶무대디자인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해 토니상 최다 수상작의 영예도 안았다. 각본과 작사를 맡은 박천휴 작가(42)는 한국 국적으로 토니상을 받은 첫 번째 수상자가 됐다.
이 작품은 21세기 후반 한국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들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 휴머니즘을 그렸다. 2016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뒤, 지난해 11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적인 기발함(quirky)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인간애를 녹여낸 수작이 현지화 전략에 성공하며 토니상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평했다. 현지에선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2022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등에 이어 K콘텐츠가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당시 약 300석 규모인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된 국내 토종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해 초연 9년 만에 뉴욕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 뒤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미국 현지에선 서울이 배경인 공상과학(SF) 뮤지컬이 “인간의 외로움과 유대관계의 힘이란 보편적 소재를 아름다운 음악에 담아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에선 2016년 초연부터 97회 공연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고무적인 반응을 이끌었던 작품. 하지만 지난해 11월 브로드웨이 개막 전만 해도 해외에선 고전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이날 토니상에서 각본상, 작사·작곡상 등을 공동 수상한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는 브로드웨이에서 검증된 창작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지에서 익숙한 원작도 없었다. 실제로 프리뷰 공연 초반 4주간 주간 매출은 30만 달러를 밑돌았다.
하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넷째 주 주간 매출 100만 달러를 돌파하더니, 이젠 표를 구하기 힘든 인기작으로 올라섰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인기는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진정성 있는 휴머니즘을 담아냈기 때문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배우 4명이 주도하는 소규모 작품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선율과 밀도 있는 대본, 짜임새 있는 연기 및 연출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분석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브로드웨이의 쇼 뮤지컬과는 다르게, 눈물 흘리게 만드는 한국적 정서가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과 세계에서 쌓아 올린 K콘텐츠의 ‘호감도’가 흥행에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검증을 거친 덕분에 뮤지컬에서도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단 분석이다.
■줄거리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에게 버려진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등장한다. 낡은 아파트에 남겨진 채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그들은, 어느 날 배터리가 방전돼 멈춰버린 클레어를 올리버가 구하며 가까워진다. 이후 올리버는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던 주인 제임스를 찾아 클레어와 제주도로 떠난다. 기나긴 여정 속에서 두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리움과 사랑, 우정의 감정을 마주한다.
☞토니상은
미국 연극·뮤지컬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영국 연극계의 '로렌스 올리비에 상'에 비견된다. 브로드웨이에 올라온 작품 중 우수작들에게 시상하는 상으로, 미국 방송계에 에미상, 영화계에 오스카상, 음악계에 그래미상이 있듯이 연극·뮤지컬계에는 토니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