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무조건 아이들을 가슴 벅차게 안아줘요. 네가 세계 최고야, 사랑해, 귀해, 이런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요."
추석 당일인 6일.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위기영아보호 상담지원센터)에서 만난 봉사자 마승희(56)씨는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19년부터 베이비박스에서 봉사해온 마씨는 이날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아이를 돌보는 봉사를 위해 경기 김포에서 2시간 동안 운전해 왔다고 한다.
마씨는 "요즘 무조건적인 사랑이 없다고 느끼는데, 봉사는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행위이니 봉사하면서 오히려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곧이어 마씨는 아기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날 베이비박스에서 보호 중인 아이는 한 명으로,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생아였다.
관악구의 베이비박스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다. 맡겨진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보호하고, 위기 상황에 놓인 부모들을 상담하기도 한다.
이곳에 베이비박스가 생겨난 건 2009년 12월로, 그때부터 지난 7월 31일까지 2천189명에 달하는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데다 혹시 모를 상담에 대비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추석 당일인 이날도 직원 두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지난해 8월부터 베이비박스에서 일해 두 번째 추석을 맞았다는 상담사 최주연씨는 "시댁이 전라북도 정읍인데, 미리 내려가서 사흘 있다가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근무하고 있다"라며 "감사하게도 봉사하겠다고 연락주시는 분들이 많아 봉사 대기자가 생기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일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이의 진로"라며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선택을 못 하지 않나. 어떤 방향이 아이에게 가장 행복하다는 정답은 없지만 신경 쓰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봉사자와 선생님들 사랑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가정이나 시설과 달리 외부 자극이 전혀 없는 공간이라 아이가 빨리 좋은 곳으로 이동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라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19일부터 위기 임산부가 가명으로 진료받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이들이 베이비박스의 문을 두드린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만 해도 23명의 아이가 베이비박스를 찾아왔다. 이 가운데 아이 엄마가 병원 밖에서 출산한 비율이 약 26.1%로 상당히 높았다는 게 베이비박스 측의 설명이다.
베이비박스 관계자는 "출생통보제(아동이 출생신고가 누락된 채 유기·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자동으로 통보하게 하는 제도)는 많이 알려진 반면, 보호출산제가 정확히 어떤 제도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출산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병원이 아닌 곳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위기 상황에 있는 엄마들은 공적인 시스템에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찾아오시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하여 키울 수 없게 된 아기를 맡기는 장소인 '베이비박스'. 아기들을 버리는 유기장소인가, 아니면 아기들을 살리는 생명 보호 장치인가. 가족들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추석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