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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준철의 ‘시쓰고 중얼중얼’

  • 나를 본다 

    나를 본다  구자애 그늘에 기댄 오후 사무실로 뛰어든 토끼 한 마리 막다른 골목이었다기엔 두려움 없는 눈 동굴이라고 숨었다기엔 더더욱 긴장감 없는 두 귀 이미 문명화된 또 다른 포유류 먹이사슬을 끊고 의탁하며 사는 날것의 비애 사육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르는  저, 이데아 토끼


  • 내 어머니의 발가락이 늙었다

    내 어머니의 발가락이 늙었다                                                                 김준철


  • 하얀, 혹은 검은 눈물

    하얀, 혹은 검은 눈물                            김준철 배넷저고리를 입고 싶다 처음 세상과 나를  격리시켰던 부드러운 온기의 그 하얀,


  • 단 한번의 연주를 노래함

    단 한번의 연주를 노래함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손 끝이 가늘게 떨리며 삶의 한 귀퉁이를 지긋이 누르자 비가 내렸다 어둠의 기억 속, 깊숙이 던져지는 잡음들 어지럽게 널려져있던 검은 눈물방울의 악보들이 땅으로 떨어지며 쓰러져있던 그의 하얀 손가락을 덮는다 깊은 잠 속에서 쏟아지는 땀 방울들이 살아나 빠르게 건반을 누르고 비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숨막히게 다가오는 생명의 소리들 건반 위를 산책하는 비의 발자국, 창가에 멈춰 선다 영혼의 느린 유형처럼 손가락의 더딘 음색이 창가에 비치고 나를 떠난 나의 깊은  떨림


  • 피고, 지고, 서럽고

    피고, 지고, 서럽고 김준철 꽃이 피어 서럽고 꽃이 지어 서럽다 넓은 땅도, 좋은 집도 원치 않는다 작은 온기에 잠깐 기지개켜듯 피고 한숨처럼 사라질 터


  • 초봄

    초봄                                                         지난해 내게 왔던 매화꽃이 다시 왔다 엄혹한 날들을 얼마나 치열하게 지나왔는지 알고 있는 바람이 꽃잎 위에 앉아 희디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목을 젖히며 웃고 등을 가볍게 때리기도 하는  그들의 대화는 출렁거린다 조릿대 이파리마다 맑은 햇살이 내려와 이파리를 투명하게 닦고 있다 ---중략---- 사막을 지난다 싶으면 동반자를 보내주고 패배의 날들이 지속된다 싶으면 벌판 끝에 풀꽃들이 기다리고 있게 해 주는 이 거칠고 사나운 것들과 맞서는 동안에도 영혼 안에 맑은 기운이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 그이가 햇살과 바람을 보내시는게 아닐까 싶다 참혹한 순간이 와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참해진 날에도 오물을 씻어내며 내게 오던 햇살과 바람을 생각한다 지난 해 왔던 매화꽃이 나를 향해 진군해 오는 이유를 나는 안다 밝고 얇은 봄볕이 댓잎에 앉아 햇살대패로 그 잎을 환하게 문지르고 있는 이유를 나는 안다


  • 심청

    심청                                          허련화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팔았다 심청의 몸값은 심봉사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었다 그 눈에 비친 몇 십 년의 피고 지는 계절 속의 풍경이었다


  • 버려짐에 대하여 

    버려짐에 대하여  박인애   노인의 집 앞에 웃돈을 얹어주어야 치워 갈 듯한  대용량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구형 모니터와 무거워 보이는 데스크톱 전선으로 목이 칭칭 감긴 키보드  유선 마우스와 스피커까지 일가족이 거리로 나앉았다 


  • 하루가 산다

    신년 축시 하루가 산다 시인 김준철<미주 문인협회 회장> 하루가 하루를 덮고 그 하루가 다른 하루를 녹이고 또 하루가 그걸 채우고 비우고 지우고 어느 하루는 기억이 되고 그 하루는 저 하루를 위로하고 그다음 하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다독 하루의 허락으로 또 하나의 하루를 사는    버릇처럼 지나친 시간 그 끝자락의 아우성 고요한 밤의 어둠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다가온다 다가와서 삐쭉 얼굴을 내밀고 속삭인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잘 버텼다    하루가 시무룩하게 사라진다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가 불쑥, 잊혔다가 불쑥, 뜬금없이 불쑥, 오늘처럼 나타나기도 하며 그렇게 산다


  • 12월 깨다

    12월 깨다 김준철 왜 캐롤은 숨차게 빠르거나 숨막히게 느린걸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왜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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