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00:00:00
문정희
2023-10-19 00:00:00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목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2023-10-05 00:00:00
높게 시작해 꺽이듯 올라가다 멈춰 버리는 나와 달리 낮게 시작해서 더욱 깊이 잠겨드는 너 행여 이 슬픔이 깨질까 혹여 누군가에게 묻을까
2023-09-21 00:00:00
텅 빈 냉장고는 서늘하다 맥 빠진 성욕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말간 눈빛이 텅 빈 자신의 몸 속을 비추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몸은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밀폐된 냉기 속에 갇혀 미이라처럼 변하지 못하고 있다
2023-09-07 00:00:00
호흡마다 가시가 돗아나고 자고 깨는 일이 죽고 사는 것보다 어렵다 붉은 꽃의 선명한 고통으로 숨도 쉬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표적도 없는 화살들이 비처럼 내리 꽂히고 바람은 날을 세워 베기를 멈추지 않는다 보드라운 일상의 햇살이 사나운 너울이 되어 길을 막는다
2023-08-17 00:00:00
허공은 자유로울까 아무 것도 나를 잡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 끝없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멈춰져 있다는 것은 무엇엔가 붙잡혔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는 것일까
2023-08-03 00:00:00
견고하게 냉동 처리된 생선들을 바다에 던져라 가라앉는 생선들 지느러미의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수직으로 심연의 어둠으로 잠영해 들어가는 것들 단단한 봉인인 양 잠기는 것들 부활의 기도는 없음에도 심해로 떨어져 내린다 약속된 깊이를 지나면 봉인이 풀린 것들이 절망처럼 온 길을 따라 세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냉정한 바다에서 버려진 생선들의 멀건 눈알이 네온 불빛에 애써 반짝이며 물 위에서 뻐금거린다
2023-07-13 00:00:00
달래다 지친 나는 그대를 어르다 지친 나는 화도 내고 윽박도 지르고 한동안 멀리 떠나기도 하고 깊이 숨어들기도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답이 안 나오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살며시 귀 기울이기도 합니다
2023-06-30 00:00:00
슬픔이 슬프다 김준철 은연중 낯설음으로 서로거 서로를 지나간다 안보이는 것을 굳이 보려는 사람이 쓴 발표할 곳 없는 시는 그 사람처럼 슬프다
2023-06-16 00:00:00
허기를 끌고 김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