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늦춰질 경우 사태 악화 우려
조기에 수습되면 소비자 혼란과 삼성전자 타격 최소화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삼성전자[005930]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결함에 따른 리콜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 중인 가운데, 이르면 금주 내에 이뤄질 수도 있는 미국 정부의 공식 리콜이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 공식 리콜이 발령되면 유통 중인 제품들에 대한 수거 조치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면 미국의 공식 리콜 발령과 그에 따른 수거 조치가 조기에 순조롭게 이뤄지고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한 삼성전자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장기적으로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문제는 공식 리콜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삼성전자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 미국 CPSC, 공식 리콜 기정사실화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지난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갤럭시노트7을 쓰는 모든 소비자에게 사용·충전 중단을 권고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공식 리콜을 발표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시기는 밝히지 않았으나 공식 리콜 발령 계획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미국 공식 리콜의 형식은 CPSC와 조율을 거친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사들의 '자발적 리콜'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2006년 소니 배터리 발화 사건, 2009∼2010년 도요타 급발진 사건 등 전례를 보면 미국 당국의 공식 리콜 발령은 미국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의 정점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 시장이 매우 큰 데다가 강력한 소비자 안전 규제를 시행하는 미국의 조치에 다른 나라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형식상 자발적 리콜이라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CPSC의 관리감독 없이 자체적으로 공식 리콜을 진행할 수는 없다"며 "CPSC가 공식 리콜을 발령하면 제품 수거 계획서를 접수하고 소비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리콜 관련 광고를 성실히 하는지 등을 계속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 공식 리콜 조기에 이뤄질까

삼성전자는 이미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교환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CPSC의 공식 리콜이 발령되면 추가조치를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CPSC 발표문에도 "삼성전자 또는 통신사들의 교환 프로그램이 수용할만한 조치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때에 따라 교환 프로그램보다 더 강력한 조처를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다.

공식 리콜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CPSC가 교환용으로 공급되는 새 기기의 안전성을 조기에 인정해 주지 않을 경우다. 삼성전자 미주법인은 9일 안내문에서 기존 기기의 대체품으로 갤럭시노트7 신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CPSC 승인 대기중'(pending CPSC approval)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삼성전자는 교체 물량 공급을 국내외에서 19일부터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나, 만약 미국에서 CPSC가 이 계획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거나 공식 리콜 발령을 늦출 경우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소비자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핵심은 교환할 수 있는 제품이 언제 준비될 것이냐가 아닐까 싶다"며 "소비자들이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하면 리콜 압력이 클 것이고, 국내에서처럼 19일쯤 신제품이 문제 없이 나온다고 하면 이 상태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미국은 애프터서비스 환경이 국내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삼성이 대처해야 할 것"이라며 "리콜이 원활하지 않으면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규제 당국이 강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삼성 원인파악·재발방지책이 관건

CPSC가 공식 리콜에서 삼성전자의 교환 프로그램을 조기에 수용할 것인지 혹은 더 강력한 추가 조치를 내리거나 아예 공식 리콜 발령 자체를 늦출 것인지는 삼성이 제출할 원인파악과 재발방지책 보고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제품 결함의 원인을 정밀하게 규명하고 불량 가능성이 있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해 교체 기기에서는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CPSC에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면 이미 내놓은 삼성의 교환 프로그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가 CPSC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공식 리콜 발령시 추가 조치를 내놓아야 하거나, 공식 리콜 발령 자체가 늦춰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그간 실시해 온 배터리 불량 여부 판정이 얼마나 정확한지도 밀접하게 결부돼 있어 주목된다. 일부 국내 인터넷 게시판에서 배터리 점검을 받은 후에도 발화 사고를 겪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일 갤럭시노트7의 교체 계획을 발표할 당시 "배터리 제조 공정상 오차 등 품질관리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공급사와 함께 불량 가능성이 있는 물량을 특정하기 위한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상세한 조사 진행 상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규제기관이 사태가 해결 안 됐다고 보거나 제조회사의 결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면 공식 조사를 할 수도 있고, 해결됐다고 하면 (규제기관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며 "삼성SDI가 제조 문제냐, 설계 문제냐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향후 전망

이번 사태로 갤럭시노트7의 글로벌 판매와 이미지에는 상당한 타격이 있었다. 이미 출시가 이뤄진 한국, 미국 등 10개 시장에서 판매·전시가 중단됐으며, 당초 9월 초로 예정됐던 유럽 시장 출시도 연기된 상태다. 주요 시장 중에는 오직 중국만 정상 판매가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

시장에 따라 다르지만, 판매·전시 재개는 대체로 10월 초가 돼서야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삼성전자도 그에 맞춰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미국 공식 리콜이 발령되고 기존 배포 제품을 대체할 물량의 공급이 일단 이뤄지고 나서야 판매가 재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곳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최대 라이벌인 애플이다.

지난달 19일 시판돼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던 갤럭시 노트가 이번 사태로 이달 말까지 정상 판매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달 16일 출시 예정인 아이폰7과 7 플러스의 판매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인 중국 화웨이나 최근 V20을 내놓은 LG전자도 일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기기 교체와 판매 재개가 얼마나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지는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