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줄 알았는데…아들에게 빚진 사랑 갚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3살 때 미국에 입양돼 두 번의 파양과 학대를 겪은 '기구한 운명'의 애덤 크랩서(41. 한국명 신송혁) 씨는 현지 시민단체들의 구제 노력에도 미국에서 추방을 앞두고 있다.

크랩서 씨를 한국에서 눈물로 기다리고 있는 생모의 사연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한국발 기사에서 전했다.

NYT는 지난해 초 미국 이민자 사회에서 처음 크랩서 씨의 사연이 알려졌을 때부터 그의 이야기를 보도해 왔다.

이 신문이 경북 영주에서 만난 크랩서 씨의 생모 권필주(61) 씨는 "그 아이에게 할 말이 너무 많다. 특히 내가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라면서도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아들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크랩서 씨의 사연이 방송될 때까지도 권씨는 아들이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크랩서 씨는 1979년 누나와 함께 미시간 주의 가정에 입양됐지만 5년 동안 성폭행 등 온갖 폭력에 시달리다 파양됐다. 1년 뒤 다시 오리건 주의 가정으로 입양됐지만, 이곳에서 역시 4년 동안 성폭행과 학대에 시달렸다.

두 번째 양부모는 구속됐고 크랩서는 노숙 생활을 하며 방황했지만, 재기에 성공해 아이 셋을 둔 가장이 됐다. 그러나 양부모들이 크랩서의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던 바람에 불법 체류자가 돼 버렸다.

권씨는 "그렇게 어렵게 살고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같이 굶어 죽더라도 함께 살았어야 했는데.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후회했다.

권씨는 어렸을 적에 침을 맞았다가 왼쪽 다리가 마비됐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는 권씨를 뇌성마비가 있는 남성과 함께 살도록 보내버렸고, 권씨는 나중에 다른 남성을 만나 크랩서를 포함해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권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결국 권씨와 자녀들을 버렸다.

의지할 곳 없던 권씨는 결국 막내아들을 자식 없는 집에 보내고 딸과 크랩서는 입양을 주선하는 보육원에 데려갔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권씨는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권씨는 서울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했다.

아이들을 목욕시킬 물을 마을 우물에서 떠오다가 불편한 다리 때문에 모두 흘려버려 수없이 오갔던 일, 아이들이 간장과 기름에 비빈 밥을 허겁지겁 먹던 일 등 아픈 기억을 흑백사진과 함께 가슴에 품고 살았다.

권씨는 "날이 궂으면 아이들이 특히 그리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20살 많은 홀아비와 재혼한 권씨는 양부모 손에 자랄 자식들을 생각하며 남편의 두 딸을 제 자식인 양 키웠다. 이후 낳은 네 명의 딸도 모두 출가했다.

지난해 크랩서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한 친척이 TV에 나온 크랩서를 보고 권씨에게 전화를 했다.

TV 속 크랩서는 '엄마'라는 말만 한국어로 하면서 "나는 언제나 당신의 아들, 피와 살이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PD를 통해 크랩서와 화상대화를 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 관계를 확인했다.

크랩서 씨가 제기했던 추방 취소 신청이 지난달 말 이민법원에서 결국 기각되면서 그는 몇 주 안에 아내, 세 딸과 함께 한국으로 온다.

권씨는 아들이 쓸 작은 방을 정리하면서 아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무슨 음식을 해줘야 하나 생각하느라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줄이 처진 노트에 알파벳을 베껴 쓰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60대의 권씨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 아들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권씨는 "나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그 애에게 빚진 너무나 많은 사랑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