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오랜 기간 불특정 다수에 적개심…지속적인 살해 욕구 보여"

피해자 여동생 "마음에서는 사형…너무 억울하고 언니에 미안" 눈물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강원도 인제에서 일면식 없는 50대 여성 등산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20대에게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형이 내려졌다.

춘천지법 형사2부(진원두 부장판사)는 6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23)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오랜 기간 불특정 다수에 적개심과 극단적인 인명경시 태도, 확고하고 지속적인 살해 욕구를 보여왔다"며 "오로지 자신의 살해 욕구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고,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이씨가 일기장에 쓴 '대부분의 사람이 무례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 죽여버릴 권리가 있다', '닥치는 대로 죽이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100명 내지 200명은 죽여야 한다' 등 내용을 언급하며 이씨의 극단적인 인명 경시 태도를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이른바 묻지마 살인 범행으로써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며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과 공포의 깊이를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에 대해 미안함이나 최소한의 죄책감,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반성문 등을 통해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나 부모를 탓하는 등 다소 자기연민 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다소 불우했더라도 피고인의 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범행 동기와 경위, 수단과 결과, 유족들의 엄벌 탄원 등을 종합하면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정을 찾은 피해자의 여동생(48)은 판결을 들은 뒤 "사형을 바라기는 했으나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니 무기징역도 받아들이겠다"며 "그래도 우리 마음에서는 사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끝까지 반성도 하지 않고, 사과의 말도 안 했다"며 "너무 억울하고 언니한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지난 7월 11일 인제군 북면 한 등산로 입구에서 한모(58)씨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잔혹하게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도권에 사는 한씨는 일행 2명과 함께 등산하고자 이곳을 찾았으나 산에 올라가지 않고 등산로 입구에 세워둔 승용차에 남았다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차량 정밀감식과 탐문 수사를 통해 인근에 거주하는 이씨를 긴급체포한 뒤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까지 투입했으나 뚜렷한 범행 동기는 나오지 않았고, 정신감정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다.

검찰은 앞선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장기간 범행을 계획했고, 살인의 죄질도 불량한 만큼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씨는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답했을 뿐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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