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경 "기상 불량으로 전복→표류→방파제 충돌→침몰 추정"

해양경찰청장 "내 가족 찾는다는 심정으로 실종자 수색에 최선"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세밑 한파 속에 제주 해상에서 선원 7명이 탄 어선이 전복돼 이틀째 실종자 수색이 이뤄지고 있지만, 기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청은 제주시 한림 선적 저인망어선 32명민호(39t·승선원 7명)가 기상악화로 전복돼 승선원 전원이 실종됐다고 30일 밝혔다.

해경은 전날인 29일 오후 7시 44분께 제주항 북서쪽 2.6㎞ 해상에서 32명민호가 전복됐다는 신고를 받은 뒤 19시간 넘게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고 선박에는 선장 김모(55)씨를 비롯해 한국인 4명과 인도네시아인 3명 등 총 7명이 타고 있었다.

해경은 현재 함선 5척(함정 8척, 민간어선 1척)을 동원해 제주항을 중심으로 동서 6.1㎞, 남북 5.9㎞ 해상을 정밀 수색을 벌이는 한편 육상에도 970여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실종된 선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사고 해역의 기상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제주 전역에 강풍특보가 발효됐고, 제주 전 해상에 풍랑경보가 발효 중인 상태로 사고 해역에 초속 12∼20m의 강한 바람과 4∼5m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다.

악천후 속 구조과정에서 해경 구조대원 2명이 파도에 휩쓸려 어깨가 탈골되는 등 크게 다쳤고, 고속단정 2척이 침수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종된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해경에 따르면 현재 사고 해역의 수온은 18∼19도로, 국제매뉴얼 상 해당 수온에서 최대 33시간까지 생존 가능하다.

하지만 강풍과 높은 파도 등 각종 기상 상황에 따라 골든타임은 더 줄어들 수 있다.

32명민호 사고는 제주해경에 신고가 접수되기 전 29일 오후 7시 27분께 외국인 선원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최초 신고가 이뤄졌다.

32명민호의 외국인 선원이 부산시 소재 외국인 선원관리업체에 구조요청을 했고, 이후 부산해경서에 경유 신고가 접수됐다.

해경은 선원들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사고 당시 선원 5명(한국인 2명, 인도네시아인 3명)은 전복된 선박의 선미 쪽 하부 선실 내에 타고 있었으며, 나머지 한국인 선원 2명은 조타실에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해경은 야간 악천후 등으로 전복 어선을 발견하지 못하다 오후 9시 8분께 제주해경 헬기를 통해 제주항 북서쪽 1.6㎞에서 전복 어선을 발견했다.

해경 구조대원이 오후 9시 21분께 사고 어선에 올라타 선체를 두들기며 타격 시험을 했고, 선내에서 생존 반응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해경구조대와 특공대, 항공구조대가 선내 선원 구조를 위해 9시 52분부터 총 8차례에 걸쳐 선내 진입을 시도했으나 기상악화로 실패했다.

다음날 오전 3시 13분까지 11차례 통화를 하며 선원들의 생존을 확인했지만, 전복된 선박은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표류하다 오전 3시 47분께 제주항 서방파제에 좌초 후 파손돼 선원 7명이 실종됐다.

해경은 어선이 외부 충격과 화재에 매우 취약한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져 충돌 후 완파돼 사실상 침몰한 것으로 보고 있다.

32명민호는 풍랑주의보 발효 전인 29일 오후 4시께 성산항에서 출항했다.

32명민호가 조업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림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신호는 외국인 선원의 최초 신고가 이뤄지기 5분 전인 오후 7시 22분께 소실됐다.

해경에 따르면 어선위치발신장치는 일정 각도 이상 넘어지면 신호가 오게 돼 있지만, 배가 급격히 침수될 경우 기계가 망가져 신호가 발신되지 않을 수 있다.

해경은 사고원인을 기상 불량으로 인한 전복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수색 구조를 마무리한 뒤 정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천식 제주해양경찰청 경비안전과장은 "구조자원을 총동원해 이른 시일 안에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승선원 가족들에게는 사고 이후 선주를 통해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에 대해서는 대사관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며 "안타까운 사고를 접한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김홍희 해양경찰청장도 제주를 찾아 32명민호 전복사고 현장 수색상황을 지휘 점검하고 "내 가족을 찾는다는 심정으로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열악한 기상 상황으로 인해 수색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종된 선원들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b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