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점·현금인출기 북새통…"어디로 가야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24일(현지시간) 새벽부터 포성과 폭발음이 울린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침공에 당황한 주민들이 속속 피란 행렬에 합류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날 새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 선언하자 오전 5시께부터 수도 키예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에는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잇따랐다.

키예프 인근에서만 '쿵쿵'하는 폭발음이 대여섯 차례 들렸고, 이에 시민들은 공포 속에서 짐을 꾸리고 폭발음을 들으며 인근 지하철역으로 대피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시민들에게 중요한 업무가 없다면 최대한 집에 머물라면서도 피란을 떠나야 할 경우를 대비해 짐을 꾸려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폭격을 피하고자 기차나 자동차로 도시를 앞다퉈 빠져나가려는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동, 북, 남쪽 3면에서 공세를 펴는 러시아군의 침공을 피해 서부로 피란을 떠나려는 인파가 몰리며 주요 도로가 교통 체증으로 마비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서부 중심 도시 리비우로 향하는 주요 4차선 도로에서는 밀려든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수십㎞까지 늘어질 정도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뒷좌석에 세 살 된 딸을 태운 채 교통 체증으로 발이 묶여 있던 한 운전자는 "푸틴이 우리를 공격했고, 전쟁이 시작됐으니 떠난다. 공습이 두렵다"면서 일단 키예프를 탈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연합뉴스와 통화한 현지 교민들도 실제 이런 '탈출 행렬'로 고속도로가 마비된 상태라고 전했다.

키예프에서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김도순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다들 패닉 상태"라며 "우리 가족도 급히 서쪽 유럽 국경 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아직 키예프를 빠져나가지도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란 행렬이 키예프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도로에 꽉 차면서, 차가 엄청나게 막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경까지 가려면 600㎞는 가야 하는데, 일단 처가 식구들을 안전한 쪽으로 대피시켜놓고 우리 가족은 어떻게든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차가 없는 시민들은 공항과 버스 정류장 등을 찾았지만, 피란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공항을 찾은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오늘 키예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가려고 했는데, 전쟁이 격화돼 비행편이 전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 비행편은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서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피를 하기 전 현금을 챙기려는 이들로 현금인출기 앞은 길게 줄이 늘어섰다. 시내 슈퍼마켓과 식료품점에는 식량과 생필품을 사러 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장바구니에 물병을 가득 담고 계산대를 기다리며 줄을 서던 주민 니키타(34)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면서 "나는 건강한 성인 남자니까 짐을 싸고 음식을 사서 가족들과 집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pual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