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한은총재, 尹측 의견수렴" 주장에도…尹측 "협의 없었다" 즉각 반발

"감사위원 강행 명분" 비판에 진실 공방까지…감사위원·집무실 뇌관 여전

7인체제 감사위원 중 '1자리' 핵심되나…신뢰문제 불거지며 감정싸움까지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박경준 이은정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치 국면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3일 쟁점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양측의 갈등이 증폭되는 듯한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윤석열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강조했지만 윤 당선인 측은 "협의한 적 없다"고 즉각 부인하며 양측의 진실공방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인 감사위원 인선, 집무실 이전 문제 등도 이견이 좁혀질 낌새가 보이지 않아 초유의 신·구권력 대치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점심 식사 시간대인 낮 12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급작스럽게 이뤄진 인선 발표였다.

특히 청와대 측에서는 "윤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 발표하게 됐다"며 이번 인사 발표는 일종의 '화해 제스처'라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정작 윤 당선인 측에서는 즉각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

양측의 주장은 극명히 엇갈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에게 한은 총재 후보로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후보자와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며 "이 수석이 '둘 중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창용' 이라고 (답을)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 측에서 이 후보자를 원한다는 신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 실장은 기자들을 만나 "이철희 정무수석이 '이창용 씨 어때요' 하니까 (제가) '좋은 분이죠'라고 한 게 끝"이라며 "협의한 것도, 추천한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발표 직전까지 이 후보자에 대해 "추천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인사"라는 의사를 청와대 측에 전했다는 것이 장 실장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감정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청와대 측에서는 "(윤 당선인 측이) "자꾸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그동안 협의 내용을) 다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뭘 공개하는지 모르겠지만, 공개 하십시오"라고 받아쳤다.

협상 파트너로서의 신뢰가 훼손되는 듯한 모습에 향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번 갈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 문제에 대한 대치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해법 모색이 한층 요원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장 실장은 "(청와대의 이날 한은 총재 임명은) 감사원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두 자리가 공석이다.

이 두 자리에 대한 인사를 윤 당선인 측의 의견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게 윤 당선인 측의 생각이지만, 청와대에서는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각자 한 자리씩을 추천하는 '절충안'도 제시됐지만, 윤 당선인 측에서 '비토'를 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인사를 강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윤 당선인 측에서 제기하며 논의는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현재 감사위원 가운데 3명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성향이 분명한 사람"이라며 "(감사위원 7인의 인적 구성을) 4대 3으로 만들고 나가면 어떤 감사가 진행될 수 있나. 이 정권에서 하는 모든 일의 방점이 여기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현재 감사위원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최재해 감사원장, 문 대통령과 검찰 개혁 저서를 공동 집필한 김인회 위원, 이낙연 총리 시절 국정운영실장을 지낸 임찬우 위원 등 3명은 문 대통령에 우호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1명만 더 문 대통령에 우호적인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면 다음 정권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감사를 하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 중이지 안겠냐는 게 윤 당선인 측의 생각인 셈이다.

결국 감사위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의 갈등의 골을 메우는 일이 요원한 상황으로 보인다.

나아가 집무실 이전 문제 역시 '최대 난관' 중 하나로 남아있다.

청와대에서는 집무실 이전 문제와 별개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집무실 관련 내용 역시 회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에서는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승인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상황에서 회동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윤 당선인의 갈등이 감정싸움 양상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보인다"며 "윤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기까지 청와대와 윤 당선인이 대치가 풀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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