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재난대응 주무부처인데도 112 상황 보고 못받는 체계

경찰·소방간 재난통신망도 무용지물…"재난보고 핫라인 점검"

(세종·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계승현 기자 = 이태원 참사 원인과 관련해 경찰 내부의 보고·지휘 체계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역할 또한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난 징후를 포착해 전파하는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상황실)은 정작 육상에서 발생하는 사고 관련 112 신고는 접수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보고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가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압사당하는 역대급 참사였음에도 장·차관에게 직접 보고되지 못해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보다 보고를 늦게 받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행안부가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소방, 경찰 간 원활한 정보 공유를 위해 1조5천억원을 들여 지난해 구축한 재난안전 통신망조차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 행안부는 못 받는 육상사고 112 신고

4일 행안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 내용을 종합하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 상황, 소방 출동 상황 등을 파악하고 전파하는 행안부 상황실은 상황실장을 중심으로 13개 중앙부처와 4∼8개 유관기관에서 파견된 인원이 4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행안부가 상황실을 통해 이태원 참사를 보고받은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48분이었다.

오후 10시 15분 119로 들어온 첫 사고 신고가 31분 뒤인 오후 10시 46분 소방청 119 상황실에 전파됐고, 소방청이 상황실이 2분 뒤 이를 행안부 상황실로 보고한 것이다.

이미 사고는 오후 10시 15분 발생했고, 그 이전부터 112 신고가 잇따랐으나 행안부는 소방청 보고 이전에는 참사 징후를 파악조차 못했다.

경찰 112에는 같은 날 오후 6시 34분 첫 신고가 들어온 뒤 오후 10시 11분까지 11건의 신고가 들어왔으나 행안부 상황실로는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시장, 군수, 구청장, 소방서장, 해양경찰서장 등만이 관할 구역이나 소관 업무에서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하게 돼 있고, 경찰서장은 이 법에서 빠져 있다.

따라서 119 신고와 함께 해상사고는 112로 신고를 해도 해양경찰서장이 이를 행안부 상황실에 전달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같은 육상사고의 112 신고는 행안부 상황실로 전파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행안부는 국민 안전 및 재난 대처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임에도 소방 119 신고 외에 경찰 112 신고 상황은 반쪽짜리 정보만 접수해왔던 셈이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112 신고 중 해상사고만 행안부로 접수되는 이유와 관련, "해상에서의 사고는 성격상 재난이 될 우려가 커서 해경의 정보가 행안부 상황실로 들어오지만 (경찰 사건 등)육상 112 신고는 재난하고 다른 측면도 있어 법체계상 보고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경찰청과 협의해 (112 신고) 정보를 취합할 수 있도록 법적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

◇ 행안장관, 참사 발생 1시간 만에 문자로 인지

이태원 참사 당일 행안부 상황실의 접수 이후 장관 보고까지 30여 분이 걸린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에 따르면 상황실로 접수된 재난 내용은 상황담당관이 재난 사고의 규모를 고려해 심각도에 따라 1∼4단계로 판단한 뒤 단계별로 상황 전파 범위를 결정한다.

심각도가 가장 낮은 1단계는 소관 국·과장에게만 보고가 전파되고, 2단계가 되면 소관 실장과 장·차관 비서실 등, 3단계에는 장·차관과 과장급 이상 모든 간부에 내용이 내부 긴급문자(크로샷)로 전달된다.

가장 심각한 재난인 4단계에 이르러서야 장·차관에게 직접 보고가 이뤄진다.

이태원 참사 당시 상황담당관은 상황실로 접수가 들어온 지 31분이 지난 오후 11시 19분에서야 상황 2단계를 발령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분 뒤인 오후 11시 20분 장관 비서실을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 상황 2단계 발령에 따라 장·차관 비서실에 전달된 크로샷이 장관 비서실 직원을 통해 장관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수습 최전선에 나서야 할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19분이나 늦게, 그것도 경찰이나 소방 직보가 아닌 내부 직원이 전달해 준 문자를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이미 1시간여가 흐른 뒤였다.

◇ 지자체·소방·경찰간 재난통신망도 무용지물

정부가 지난해 1조5천억원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 역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 재난 관련 기관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으로,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필요성이 부각돼 지난해 구축 완료됐다. 당시 정부는 4세대 무선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재난통신망을 구축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통화그룹에 포함된 유관기관들이 다 연결돼 통화를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작동이 잘 안됐다"고 시인했다.

그는 "다만 기관 내부에서의 통화는 이 통신망으로 원활히 이뤄졌다"며 "가령 경찰 단말기는 현장에 1천500대가 있었고 그 단말기들이 동시에 통화했고, 소방과 의료기관도 마찬가지로 (기관별) 통화에 이 통신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소방, 경찰 등 기관 간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김 본부장은 "현장에서 활용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재난보고 핫라인 구축해야…美 911처럼 112·119 통합 필요성도"

전문가들은 현재의 행안부 재난 보고·전파 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대응 골든 타임을 놓쳐 사고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재난 보고 시스템을 싹 갈아엎어야 한다"며 "행안부가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 조직을 통제하겠다고 했다면 재난 보고 핫라인도 갖췄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행안부 내 재난 상황 분류에도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보고 체계는 이중으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소방청장 등 유관기관 수장들에게 동시에 보고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미국 등 선진국처럼 112, 119 신고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 원장은 "일반 국민은 위기 상황에서 112, 119 신고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911처럼 신고 통로를 일원화하거나 기관 간 신고를 신속하게 공유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염 교수 역시 "신고번호를 하나로 통합해 통합 관제 시스템을 만들고 지휘체계를 줄여 재난 대응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