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부족' 사태 심각…묘비 대신 고인 옷 조각 등 남겨두기도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강진이 21세기 들어 역대 6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내면서 곳곳에서 희생자를 묻을 묘지 공간마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강진의 진앙인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주(州) 누르다으의 한 공동묘지는 최근 묘지 공간을 확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수많은 지진 사망자를 묻었지만,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의 사망자 수는 지금까지 3만7천 명 이상으로 집계돼 2003년 이란 대지진(사망자 3만1천 명)의 피해 규모를 뛰어넘었다.

튀르키예 당국이 집계한 자국 내 사망자 수는 3만1천643명에 달한다.

누르다으에서 장례식을 주관하는 이맘(종교 지도자) 사드크 귀네슈는 "6일 이후 지금까지 몇 명을 매장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면서 이곳의 묘지를 넓힐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귀네슈는 "이곳에 살던 사람의 40%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면서 "건물 잔해 밑에는 아직도 여러 명이 깔려 있고 우리는 시민의 도움으로 밤늦게까지 회수한 시신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누르다으 공동묘지 앞 거리에서는 아직 매장되지 못한 시신 수십 구가 트럭 위에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지안테프에서 약 80㎞ 떨어진 도시 카흐라만마라슈의 공동묘지 여러 곳에서도 굴착기를 동원해 새 무덤을 파고 있다.

이 지역 공동묘지에는 이미 지진 사망자 5천 명이 매장됐으나, 현지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2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곳 전체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수치다.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가운데 카흐라만마라슈 당국은 아예 새로운 묘지를 마련하는 등 대책 수립에 나섰다.

가지안테프에서 약 100㎞ 거리에 있는 남부 도시 오스마니예도 묘지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오랜 내전을 겪은 시리아 북동부의 아프린 지역에서는 임시 매장지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프린은 시리아 반군이 장악해 현재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다.

대규모 사망자가 한꺼번에 나오면서 매장이 급하게 이뤄지다 보니 묘지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가지안테프에 만들어진 일부 무덤은 고인의 이름을 새긴 비석조차 세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유족들은 고인의 옷에서 자른 천 조각 등이 무덤 앞에 놓인 것을 보고 묘를 식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카흐라만마라슈에서는 나무판자와 콘크리트 블록이 묘비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나면 이 같은 묘지 부족 문제는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길 확률을 24%로 추정했다.

hanj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