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된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의 무력 분쟁인 이 전쟁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참혹한 파괴, 인도주의적 재난을 야기했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재로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다가오는 봄에 릫대결전릮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전쟁은 국제정치와 안보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이 초래한 침체에서 막 벗어나려던 세계 경제에도 다시금 큰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아 이 전쟁의 진행 경과와 의미, 전망 등을 짚어 보는 기획시리즈를 게재한다. <편집자주>

'反서방,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세력' 지정학적 대결구도 한층 선명… 세계 안보 지형 재편

[기획시리즈 / ‘우크라전쟁 1년’]

美·EU, 대러제재·군사지원 주도하며 연대

러는 북한·중국·이란과 밀착, 관계 재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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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인 듯 아닌 듯'…틈새 실리외교 추구

인도?브라질?남아공 등 ‘중추 국가'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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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파워' 부재, 진영화·다극화 현상 가속

자국 우선주의 ‘각자도생’ 대외 전략 강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최대 규모의 열전(무력전쟁·hot war)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新)냉전 시대'의 본격적인 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무엇보다 서방 대 친러로 대변되는 반(反)서방,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세력의 지정학적 대결구도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주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역할론에 회의감마저 제기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전선을 확장하며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반대편에선 상대적으로 서방 동맹에 비해 '동상이몽' 관계로까지 평가절하되던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이 관계 재정립에 나서며 밀착하고 있다.

◇끈끈한 美·EU…존재감 부상 나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미국과 EU는 대러 제재로 응수하며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고 제재는 지금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미국은 전쟁 두 달여만인 작년 4월 우크라이나 지원 공조를 위한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그룹'(UDCG)를 출범하는 등 군사 지원을 주도했고, 미국이 주축이면서 상당수 유럽 국가가 회원국으로 속한 나토의 '집단방위체제'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됐다.

지난달 나토와 EU가 5년 만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이 단적인 예다.

이 선언문에서 양측은 "나토는 동맹을 위한 집단방위의 토대이자 유럽-대서양 안보에 필수"라며 "나토와 EU는 국제 평화 및 안보를 지원하는 데 있어 상호 보완적이며 일관적이고 강화된 역할을 한다"고 명시했다.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EU로선 부족한 방위력을 메우기 위해선 나토의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더 명확히 한 셈이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미중 패권 경쟁에도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썼지만, 안보 불안감에 대중 관계도 '유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토는 한발 더 나아가 '가치 연대'를 앞세워 인도·태평양과 접점도 넓히고 있다.

작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22년 전략개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도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중국의 막대한 군사력 증강 등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명분에서다.

◇中·러 전략적 반미 연대 강화

'느슨한 관계'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연대를 한층 공고히 하는 분위기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연합군사훈련을 확대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온 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작년 2월 '무제한 협력'(no-limits partnership) 관계를 대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중국은 서방의 대중국 제재를 유발하지 않도록 러시아에 무기 지원 등 직접 개입은 자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서방의 제재 동참을 거부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당시에도 기권하는 등 '서방 일변도'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간 '밀월'도 눈에 띄게 강화됐다.

미국은 작년 1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 있는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에 북한이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공개했다.

혼돈의 국제 정세를 틈타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전례 없는 무력 시위를 잇달아 벌였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듭된 반대로 안보리 규탄 성명조차 번번이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 서방의 포괄적 고강도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와 밀착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밖에 이란은 서방 경고에도 러시아에 군사용 드론 등 무기 지원을 이어가는 한편 중국과는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반미 연대를 돈독히 했다.

반서방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이른바 친러 국가간 밀착 움직임에 대한 미국의 견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5일 싱크탱크 행사에서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패배할 것이라며 중국, 이란, 북한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 국가들이 결국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 편도 아냐, 러 편도 아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서방과 반서방 대립 속에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리외교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설 자리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대국 리더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아닌 권력의 중심이 다양한 지역으로 분할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인도가 단적인 사례로, 인도는 미국의 대중 견제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일원임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와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사들이는 등 경제적, 외교적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나토의 '이단아'로 불리는 튀르키예 역시 역사상 최악의 강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개전 초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판매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와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실익을 챙기는 국가들로 분류된다.

통일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들 국가를 '중추 국가'로 규정하면서 "현재 및 향후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중심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어 "각자도생의 자국 우선주의 대외 행태의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를 지탱하는 다양한 제도 및 규범 등을 둘러싸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력과 중국 주도의 권위주의 세력 간의 체제적 경쟁을 중심으로 느슨한 지정학의 이중적 진영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