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애틀랜틱, 韓 저출산 현상과 원인 짚어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혼인율 하락을 겪으며 저출산의 늪에 빠진 근본 원인이 다름아닌 '젠더 갈등'이라는 외신 분석이 제기됐다.

21일 미국 시사주간 '디 애틀랜틱'에 실린 "한국인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칼럼에서 언론인 애나 루이즈 서스만은 "한국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이민상태보다는 성별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단층"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주로 주거비와 양육비용, 육아 문제 등이 결혼·출산의 장애물로 꼽힌다면서도 "이는 더 기본적 역학관계인 여성과 남성 사이 관계 악화, 즉 한국 언론이 '젠더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간과하는 설명"이라고 강조했다.

서스만은 먼저 출산율 급락 현상이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국가주도 경제성장,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외환위기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으며 성별 격차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사회적 성역할 변화는 지체되면서 결국 결혼·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분노가 쌓였다고 서스만은 지적했다.

조경 분야에 종사하는 조모(49)씨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파이의 비율은 아주 적었고, 조금씩 이를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 남성에 비해서는 적다"며 "남성에게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스만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거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한국의 많은 젊은 여성이 분노하고 겁에 질렸다"며 "실제 여성가족부 조사를 보면 한국 여성 62%가 파트너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등으로 페미니즘을 접한 후에야 가부장제 및 성차별 피해의 경험을 표현하게 된 경우가 다수"라며 "이때 각성 혹은 급진화의 순간을 겪는다고 묘사들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여성 수만명이 비연애·비성관계·비혼·비출산, 이른바 '4B'(비·非)를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싱글 생활을 선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같은 여성을 상대로 데이트하는 경우도 생겼다는 것이다.

동시에 남성도 노동시장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분노를 키워가고 있다고 서스만은 짚었다.

그는 "한국 실업률은 4% 미만이지만, 20대 실업률은 상당히 높다"며 "남자는 자신들이 의무 군복무를 하는 동안 18개월에서 2년 정도 먼저 노동시장에 먼저 진입하는 여성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한다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남성 분노의 물결 속에 선출됐다"며 "그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라고도 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메갈리아'·'워마드'로 대표되는 온라인상 젠더 대립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서스만은 "전세계적으로 남자들은 인터넷에서 시끄럽다"며 "일베는 노골적인 안티페미니즘으로 유명한 웹사이트로, 대안우파 혹은 '매노스피어'(남초 커뮤니티)의 요소를 갖췄다"고 전했다.

그는 "일베 회원들은 한국 여성을 '김치녀'로 묘사하고, 허영심이 많고, 영악하고, 물질주의적인 것으로 정형화한다"며 "이들이 공유하는 '역차별'에 대한 밈과 불만에 대해 한 한국 작가는 '편집증적 여성혐오'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에 여성들도 반격에 나섰다. 서스만은 "일부가 메갈리아 웹사이트를 만들어 동일한 수사적 장치와 혐오적 표현을 남성 공격에 사용하는 '미러링' 기술을 터득했다고 설명했다.

또 성차별 속에 성장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2018년 성폭력 폭로 운동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촉발된 이후 구글에서 '페미니즘' 검색이 늘었다고 서스만은 부연했다.

다만 그는 "메갈리아 등을 통한 방법이 남성을 계몽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희생당했다며 화나 있는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더러운 단어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며 부작용을 짚기도 했다.

이로인해 여성은 물론 남성도 결혼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추게 된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박사과정생인 윤모(25)씨는 "데이트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향후 5∼6년간은 학위를 따고 취업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때가 되면 연애나 결혼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스만은 한국인 25∼49세 5천명을 대상으로 한 미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연구 프로젝트를 인용, "많은 한국인이 가족을 '사치재'로 인식한다는 것이 발견됐다"고 꼬집었다.

사회학자 김모씨는 "여성과 남성 사이 불신과 증오가 있다는 것이 한국의 출산율 감소세를 이해하는 열쇠"라며 말했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