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는 큰 혼란 없어…결혼정보업체는 당분간 연나이

학교·유치원에선 나이 낮아서 '울상'도…곳곳서 화제 만발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이율립 최원정 기자 = 28일부터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면서 전 국민의 나이가 한두살씩 어려졌다.

관공서에선 기존에도 만 나이를 사용했던 만큼 큰 혼란은 없었으나 오랫동안 '한국 나이'를 써왔던 만큼 만 나이가 관습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의 한 구청에서 여권 업무를 보던 직원은 "기존에도 여권법상 만 18세 미만인 사람은 여권 신청 시 법정대리인 동의가 필요했다"며 "현장에서는 바뀌는 게 없어 큰 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여권 업무와 관련해 외교부에서도 이날 '변경되는 것은 없다'는 내용의 공지가 내려왔다고 한다.

서울 성동구 주민 문모(56)씨는 "취미 동호회 단체 대화방에 자기소개할 때 누구는 한국 나이, 누구는 만 나이로 올려 혼란이 있었다"며 "한 살이라도 어린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생일 하루 차이로 나이가 달라지면 헷갈릴 듯해 태어난 연도로 맞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5)씨는 "회사에서 나이가 어린 편이라 나이를 공개하면 업무 처리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생길 것 같다는 걱정이 있다"며 "나이를 얘기할 일이 생기면 한국식 나이로 얘기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8)씨는 "소개팅을 나갈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나이인데 앞으로 남녀가 만나 서로 나이를 말하면서 '만 나이냐, 연 나이냐'를 따져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같은 반안에서 생일에 따라 나이가 차이가 나게 된 학교나 유치원에선 당분간 여러 '에피소드'가 생겨날 조짐이다.

초등교사노조 관계자는 "저학년은 나이 한살씩 더 먹는 게 자랑스러운 일인데 '이제 두살 더 어려지는 거냐'며 우는 일도 많았다더라"며 "지금도 생일이 하루 빠르다고 '형이라고 부르라'는 아이가 많은데 나이로 나눠 다투지나 않을까 꺽정"이라고 전했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 교사 이모(26)씨는 "아이들에게 생일이 지났으면 다섯살이고 안 지났으면 네살이라고 설명해주니 다섯살 아이가 웃으며 '아기다 아기'라고 장난쳤다"며 "만 나이로 인한 혼란은 이제 시작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가 중요한 결혼정보회사나 연령대별 차등 요금을 부과하는 여행사에선 혼란을 피하기 위해 만 나이 사용을 보류한다는 곳도 있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 관계자는 "만남에 나이가 중요한데 갑자기 바꿔버리면 혼선이 생길 수 있어 당분간 원래대로 연 나이를 기준으로 (배우자감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행사는 6세 이상부터 요금을 받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예약 사이트에 여전히 "6세는 만 나이가 아닌 한국 나이 기준"이라고 안내했다.

이 여행사 관계자는 "직원들도 아이들 개월 수까지 확인하는 게 힘들 것 같다"며 "올해까지는 계속 한국 나이를 기준으로 하고 만 나이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아 모든 사람 인식이 바뀌면 규정을 바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령대별 혜택을 제공하는 일부 기업도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20대 이용자를 위한 상품을 출시한 한 통신사는 '만 19∼29세'인 이용 대상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만 19세가 한국 나이 20∼21세인 점을 고려하면 기존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는 셈이다.

만 나이 통일에도 계속 연 나이를 적용하는 예외도 있어 당분간 혼선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술·담배를 사거나 청소년 유해업소를 출입할 수 있는 나이는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 연령 기준인 연 나이 19세 이상이 기준이다.

왕십리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2004년생까지 구매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보며 "달라지는 게 없어 걱정은 없다"면서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우려돼 잘 일러둘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직원 김모(33)씨는 "본사 직원이 지점을 돌아다니며 앞으로 '만 나이' 통일에 따라 어떤 게 바뀌는지 알려주러 온다고 해 기다리고 있다"며 "술과 담배는 기존처럼 2004년생부터 살 수 있다고 해 주민등록증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취업, 결혼 시장에 뛰어든 이들은 만 나이 사용을 반가워하면서도 당장 통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박모(31)씨는 "한국 나이 32세인데 이제 만 나이를 사용하면 30세가 된다"며 "그러면 채용 담당자가 더 좋게 봐주는 건지, 채용 때 불이익을 덜 받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송모(29)씨는 "한국 나이로 작년에 '아홉수'였는데 만 나이로 바뀌면 올해 또 '아홉수'인 거냐"며 웃었다.

alrea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