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10시 30분부터 대피안내 시작"…지인 "안내방송 했는지 모르겠다"

대구시, 태풍 당일 숨진 군위 주민 '본인 귀책→안전사고' 분류

(대구=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물건 좀 챙겨서 금방 나오겠다고 한 친구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1일 오전 10시 30분께 대구시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서 만난 60대 주민 A씨는 전날의 비극을 되새기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태풍 카눈이 마을을 휩쓴 전날 낮 마을 주변 둑이 터져 이웃 주민 김모(67)씨가 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군위군은 태풍이 상륙한 당일 주민대피 명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미흡한 대처"라고 비판하고 있다.

A씨는 하천 제방이 터지며 삽시간에 허리 부근까지 물이 차올랐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밭을 둘러보다가 낮 12시 30∼40분쯤 둑이 터졌다고 이웃이 고함을 지르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둑이 터진 사실을 그제야 알고 다급히 친구 김씨에게 전화로 대피해야 한다고 알렸다.

그는 "내가 '친구야 빨리 피하자'고 말하니까 물건만 얼른 챙겨서 금방 나가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먼저 화물 트럭을 몰고 나왔다"고 말했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이날 낮 12시 41분, 43분 두차례 등 총 세차례 친구 김씨와의 통화기록이 남았다.

그는 "친구가 금방 빠져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주민 대피 방송을 했다는데 여기는 멀어서 잘 안 들린다"며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20년 전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1∼2년가량은 텐트를 치고 살았던 그는 수년 전부터는 빈집인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은 태풍이 상륙한 10일 낮 12시 40분께 김씨의 마지막을 목격했다.

도로에서 1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로 급히 빠져나오려는 모습이었다.

한 주민은 "평소 심장이 안 좋아서 말도 헐떡이며 하는데, 거길 어떻게 빠져나오겠는가"라고 했다.

군위군은 태풍 상륙 당일 오전 11시 32분께 "현재 군위군 전역 하천 범람으로 인하여 인근 주민들께서는 지금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직전 두번의 재난 문자는 산사태 전조증상 알림과 산사태 경보 발령 등이었다.

효령면 관계자에 따르면 군위군은 남천 수위가 20㎝가량 남은 상태인 오후 11시 20분께 주민 대피 방송을 실시했다. 방송을 들은 주민 200여명은 다급히 효령초로 몸을 옮겼다.

경북도가 지난 8∼9일에 걸쳐 21곳 시군 위험지역에 대피 명령을 내린 것과 대비된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군위는 태풍 전날 비가 30㎜밖에 안 내려 전날부터 대피 명령을 내릴 상황이 아니었다"며 "태풍이 온 10일 주민대피 명령을 내려서 직원과 이장 등을 통해 대피를 안내했다"고 말했다.

군위군은 오전 10시 30분께 이장과 마을 관계자들을 통해 대피를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병수리 마을 주민들은 재난문자가 발송된 시점에는 이미 물이 들어차 넘쳐흐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군위군은 숨진 김씨의 사망 원인을 태풍에 의한 '재난'이 아닌 '안전사고'로 분류했다.

군위군 관계자는 "대피 명령에 불응하고 신속하게 대피를 안 해서 안전사고로 본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A씨는 "누구에게서도 대피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식이면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다 안전사고인가"라고 반문했다.

hs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