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관리기금 1천846억원 투입해 매립…관광·레저용지→농업용지

여권 "망할 수밖에 없는 부지 선정" 맹공…기반 시설 부실 의혹도

전북도 "관광지·상수도·도로 종합적으로 검토…적합한 부지 선정"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의 근본적 원인이 잘못된 부지 선정에 있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새만금에는 매립을 마친 적합한 부지가 있었는데도 굳이 뻘밭인 땅을 용도까지 변경하면서 메워 배수가 부실한 야영장을 만들었어야 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거액의 농지관리기금이 불필요하게 투입됐고 기반 시설 준비마저 늦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서는 지지부진한 간척 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잼버리를 악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쏟아내고 있다.

전북도는 과거 정부 차원에서 매립 방안을 논의했고 여러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합한 부지를 선정했다면서 여권의 뭇매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인프라 확충 또한 사실상 정부 소유였음에도 정치권 홀대로 그간 개발이 더뎠던 새만금 간척지에 계획대로 예산이 배정된 것 뿐이라며,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여권 맹공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새만금 잼버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며 "그야말로 망할 수밖에 없는 부지 선정"이라고 맹공했다.

정 의원은 "전북도는 매립한 지 10년이 넘어 나무가 자랄 정도로 안정화된 멀쩡한 부지를 여럿 두고도 아직 메우지도 않은 '생(生) 갯벌'을 개최지로 밀어붙였다"며 "이런 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전 세계 청소년의 꿈의 축제여야 할 잼버리가 '진흙탕 잼버리'가 되고 만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 "전북도는 매립이 한창이던 2021년 행사장 부지가 연약해 해마다 2∼137㎝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야영장에 물이 차든, 땅이 꺼지든 말든 애초부터 성공적인 잼버리 대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잼버리를 명분 삼아 중앙정부 예산으로 간척사업에 속도를 내려 했다는 의심도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은 "잼버리 야영지 부지 매립은 2020년 1월에서야 착공해 개막을 8개월 앞둔 작년 12월에야 준공했다"며 "교량과 도로 건설 작업을 고려하면 실제 매립 기간은 1년 3개월뿐이어서 졸속 매립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잼버리 유치가 최종 결정되기 전에도 이미 새만금 일대에는 매립이 완료된 땅이 얼마든지 있었다"며 "지지부진한 간척지를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부지를 잼버리 장소로 결정하고, 졸속으로 매립 공사를 추진하는 바람에 정작 기반 시설 설치 등 잼버리 준비 기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실에 따르면 전북도가 잼버리와 관련해 체결한 물품·용역·공사 계약 256건 중 15건이 개막식인 지난 1일 이후 이행이 완료되는 계약이었고, 수의계약은 56건이었다.

권 의원은 대회 준비 부족을 질타하며 "전라북도는 잼버리의 성공보다 개최를 명분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열을 올렸다"며 "새만금 개발을 위해 잼버리를 악용해 파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왜 잼버리를 농업용지에서 했을까?

새만금개발청의 새만금 기본계획에 적힌 '토지이용계획 구상안'을 보면 새만금 부지는 권역별로 크게 주거·산업·상업업무·관광레저·농업·기반 시설·환경생태 등으로 쓰임이 나뉜다.

이 중 잼버리 야영지가 있는 부지에는 별도 조항이 하나 붙어 있다. 요약하면 관광레저 권역에 속한 잼버리 부지(약 8.84㎢)는 대회가 끝난 뒤 일정 기간 농업용지로 활용하되, 새만금개발청장 요청 시 새만금개발공사 등 수요자에게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난해한 조항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새만금개발청과 전북도는 이를 두고 '잼버리 부지는 어떤 용도로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렇다면 당초 관광·레저용지였던 잼버리 부지는 왜 농업용지로 바뀐 걸까?

여기에는 대회 기간에 맞춰 부지 매립에 속도를 내야 했던 복잡한 속사정이 얽혀 있다.

2017년 1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19차 새만금위원회는 새만금개발공사를 신설해 관광레저·국제협력 용지 등 복합용지 매립을 주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설립을 준비 중인 새만금개발공사가 잼버리 부지 매립을 주관하면 제때 공사를 마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농림부가 농지관리기금 1천846억원 상당을 들여 메우기로 했다. 농지기금은 추후 용지를 매각한 대금을 납입하도록 해 손실을 막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하면 신규 사업이 아니어서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건너뛸 수 있기 때문에 2018∼2019년 기본·실시계획을 마련하고 2020년 상반기 착공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새만금위원회 결정대로 매립은 대회 전에 끝났지만, 야영지가 농지로 조성된 탓에 배수 문제가 변수로 떠올랐다. 농지는 물을 많이 가두는 게 이득이어서 최대한 평평하게 조성하기 때문에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았다. 전북도와 농어촌공사는 이 때문에 대회 직전까지도 배수로 공사와 정비에 인력과 시간을 쏟아야 했다.

◇ "관광지·수도·도로 고려해 부지 선정"

새만금 세계잼버리 부지 선정 배경을 살펴보려면 대회 유치 이전인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실사를 통해 강원도 고성이 아닌 새만금을 국내 후보지로 선정했다. 새만금이 잼버리에 필요한 단일부지(약 800만㎡)를 제공할 수 있는 국내 유일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한 덕이 컸다.

이후 2016년 8월에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새만금 지구를 실사했다. 전북도는 새만금을 구성하는 지자체인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 중 부안군을 대회 장소로 일찌감치 낙점하고 연맹 위원들에게 소개했다.

이듬해인 2017년 8월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대한민국 새만금은 경쟁국인 폴란드의 그단스크시(市)를 꺾고, 2023 세계잼버리 개최 장소로 결정됐다. 전북도는 "'백지의 땅'에 세계 청소년의 꿈을 무한대로 그려 넣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 게 유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전북도는 잼버리 부지를 부안군 일대 새만금 농업용지로 정한 것은 관광지와 수도, 도로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김관영 도지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양질의 상수도를 끌어올 수 있는 지역이 부안댐과 가까운 현재 영지였다"며 "도내 14개 시·군에서 영외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고 직소천, 고사포해수욕장 등이 부안에 집중돼 있어 그곳으로 갔다"고 말했다.

또 "과거 잼버리 사례를 살펴본 이들이 4차로가 주변에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그 지역이 4차로와 가까웠기 때문에 (개최 장소로)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전북도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부지 매립 지연으로 기반 시설 설치가 늦어졌다는 여권 공세에도 대응했다. 대집회장과 상하수도 등 시설물은 모두 조성했으며 보수·보강 등을 위해 공사 기간을 대회 개최 이후로 설정한 것이라고 도는 설명했다. 450억원이 투입된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도 임시 사용승인을 받았으며 잼버리 기간에 이용상 문제점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jay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