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15피트(약 4.5m) 거리에서 발사된 소총: 관통되지 않음'

방탄조끼에 적혀있을 법한 이 문구는 다름 아닌 미국에서 판매되는 어린이용 '방탄 가방'에 동봉된 안내문에 담긴 내용이다.

미국 몬태나주(州)에 사는 브렌다 발렌수엘라(37)는 얼마 전 학기 시작을 앞두고 자녀 벨라(15)와 케일럽(11)에게 방탄 기능이 있는 가방을 사줬다.

발렌수엘라는 온라인에서 여러 제품을 살펴보고 몇 시간 동안 방탄 기능 검사 결과까지 비교해본 뒤 이 가방을 골랐다.

이처럼 학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총기 난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녀를 등교시키기 어려워하는 부모의 사연을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조명했다.

발렌수엘라는 8년 전 오리건주에 있는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을 코앞에서 목격한 생존자다.

그가 수업을 듣던 중 전화를 받기 위해 복도로 나온 순간 총 6정을 가방에 숨긴 남성 1명이 교실로 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당시 총격으로 총 10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발렌수엘라는 교실 밖에서 참사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다치지 않은 생존자'로 남았다고 NYT는 전했다.

목숨은 건졌으나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체중 감소, 구토 등 참사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심지어 자녀를 등교시킬 때도 발렌수엘라는 극심한 불안과 불면증을 겪는다. 그가 증세를 가라앉히기 위해 처방받은 약만 26개에 달한다.

엄프콰 커뮤니티 칼리지 총기 참사 이후 지금까지 교내 총격 사건은 최소 538건이 더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CNN 분석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9일까지 미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최소 37건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최소 16건까지 포함하면 총 53건에 달한다.

지난 20년간 미국 내 총기 난사는 매년 증가했고 생존자들은 전 세대에 걸쳐 이에 따른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런 가운데 발렌수엘라는 자녀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종의 '예방 교육'에 나선 셈이다.

그는 벨라와 케일럽에게 "유사시 배낭 뒤로 몸을 피해야 한다"면서 "머리와 가슴을 감싸라"고 가르쳤다.

또 "위협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는 걸 명심하라"면서 "숨고, 도망치고, 탈출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발렌수엘라는 국가가 총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자녀에게 이에 대비한 훈련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학교들은 출입문 잠금장치를 보강하고 학부모를 포함한 방문자 신원 확인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자녀가 총기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hanj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