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순서 호명 관례 깨고 연단 오르며 野 의원에게 먼저 악수 청해

이재명과 입장·퇴장 포함 세차례 악수…野 김용민은 "이제 그만두셔야죠"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이동환 기자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김진표 국회의장님. 김영주·정우택 부의장님. 또 함께해주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을 이같이 시작했다. 통상 여야 순으로 호명하는 정치권의 관례를 깬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님. 그리고 여야 의원 여러분"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순으로 원내대표를 호명했다.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김진표 국회의장님과 의원 여러분"으로 연설을 시작했던 장면과 대비된다.

당시에는 민주당이 야권에 대한 전방위 수사·감사 등에 반발해 시정연설 자체를 '보이콧'했던 상황이었다. 이날 연설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러한 호명 부분은 윤 대통령이 직접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야와 함께 경제 복합위기 등을 타개하고 안보 불안을 극복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를 직접 거명하며 인사를 건넨 것도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양측은 지난해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식 행사에서 몇 차례 조우한 적은 있지만,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거론하며 인사말을 한 적은 없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예산 정국을 앞두고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대표의 협력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도 야권을 향한 협조 제스처를 취했다.

먼저 맨 뒷줄에 있던 민주당 홍 원내대표와 이 대표의 순서로 악수했다.

의석에 앉아있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다가오자 일어선 뒤 웃으며 악수했다.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진행된 사전환담에 이은 두 번째 악수였다.

윤 대통령은 이후 연단으로 이동하면서도 통로 쪽 의석에 앉아있던 민주당 의원들 위주로 악수했다.

윤 대통령 입장과 함께 기립 박수를 보내던 국민의힘 의원들과 달리 민주당 의원들은 손뼉을 치지 않고 착석한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이 먼저 손을 건네자 상당수 민주당 의원은 일어나 악수했다. 임종성·이형석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소 굳은 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이재명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은 다가가는 윤 대통령을 바라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기만 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연금개혁·노동개혁·교육개혁을 위해 의원님들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집행되도록 국회의 적극적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 등 발언으로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연설 중에 따로 박수를 보내지는 않았다.

연설을 마친 윤 대통령은 단상에서 내려와 6분가량 여야 의원들과 다시 악수했다. 야당 의원들은 자리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여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 퇴장 전까지 박수를 이어갔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시정연설 후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길래 '이제 그만두셔야죠' 이렇게 화답했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만두길 권한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는 다시 한번 악수했다. 맨 뒷줄 의원들과 악수를 마친 뒤 나가려다가 이 대표가 일어선 것을 보고 다시 몸을 돌려 손을 내민 것이다.

본회의장 입장과 퇴장 때 모두 악수하며 이날만 총 세 차례 손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이후 "감사합니다"라며 의석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고 퇴장했다.

dh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