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규제 완화에 시민 반응 엇갈려…카페·식당서 큰 변화는 아직

[지금 한국은]

"비용·수고 덜게 돼" 업주들은 대체로 환영…'계속 사용 자제' 반응도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종이 빨대로 커피를 마시면 젖은 신문지를 씹는 맛이 나고 시간이 흐르면 흐물흐물해져 한동안 빨대를 쓰지 않았는데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쓰게 해준다니 편할 것 같아요."

식당과 카페 등지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철회' 방침에 대해 직장인 윤도현(31)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윤씨와 함께 있던 변우현(31)씨의 생각은 달랐다. 변씨는 "환경을 생각한다면 서로 조금 양보하고 유지했어도 좋았을 정책"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8일 서울 각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윤씨와 변씨처럼 대체로 엇갈린 의견을 보였다.

종이 빨대가 음료 맛을 해쳐 불편했던 데다 종이 빨대 사용으로 인한 환경보호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서 플라스틱 빨대 단속이 사실상 무기한 연장돼 다행이라는 게 찬성하는 쪽의 주된 이유였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원생 A(27)씨는 "종이 빨대를 쓰는 게 너무 불편했다"며 "다른 나라의 쓰레기 배출량을 보면 (너무 많아서 빨대로) 환경 보호를 위한다는 내 노력이 너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마포구에서 회사에 다니는 강모(28) 씨는 "업무를 하다 보면 음료를 한참 놔뒀다가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종이 빨대가 젖고 가정통신문 맛이 나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많았다"며 "환경문제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플라스틱 빨대를 쓸 수 있다는 게 반갑다"고 말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와중에 규제가 완화돼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아쉬움을 보이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일회용 빨대를 안 쓴 지 2년이 됐다는 강모(30) 씨는 "이제 막 제도가 정착되고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인식이 고착화하는 단계인데 규제를 풀어준다니 제도의 역행"이라며 "소상공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일회용품을 쓰게 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8)씨도 "평소 일회용품을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일회용품 사용을 부추기는 것 같아 허탈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둘러본 카페와 식당들에선 규제 완화로 인한 눈에 띄는 변화는 아직 크지 않은 듯했다. 외부에선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실내에선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마포구의 한 카페 직원은 "계도 기간 동안 실내에선 일회용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를 많이 잡은 것 같다. 규제가 풀렸다고 실내에서 일회용기를 요구하는 손님은 아직 없었다"고 전했다.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규제 완화를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고 다회용기나 친환경 용품을 사용할 때 드는 비용·수고를 덜 수 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종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신모(27) 씨는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어렵다고 아무리 안내해도 위생 때문인지 일회용품을 고집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언쟁도 피할 수 있고 설거짓거리도 줄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촌의 카페 점장인 김수정(32) 씨는 "종이 빨대를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많아 현재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빨대를 쓰고 있는데 단가가 플라스틱의 3∼4배"라며 "주문한 걸 다 쓰고 나면 바로 플라스틱 빨대로 바꿀 것"이라고 전했다.

일부 상인들은 정책에 맞춰 다회용기나 종이 빨대를 대량 구매했는데 다시 방침이 바뀐 데 대한 비판도 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최창문(43) 씨는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로 다 바꿨는데 다시 정책이 바뀌면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니냐"며 "정책이 너무 쉽게 바뀌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규제가 완화됐어도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품 사용은 계속 자제하겠다는 업주들도 있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모(60) 씨는 "설거지 정도는 업주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인근 카페 직원 정모(59) 씨는 "웬만하면 매장에 비치된 다회용기를 계속 사용하려고 한다. 조금만 수고하면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bo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