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 도중 사회자 지미 키멀을 겨냥해 '악플'을 올리자 키멀이 이에 "감옥 갈 때 안됐느냐"고 응수해 현장에서 환호를 받았다.

키멀은 1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시상식 막판 최우수 작품상 시상 직전에 무대에 올라 "여유시간이 좀 있어서 방금 받은 리뷰 하나를 공유할까 한다"고 운을 띄웠다.

키멀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지미 키멀보다 못한 진행자가 있었던가. 그의 오프닝은 보통도 안 되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돼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이라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이어 "키멀을 없애고, 노련하지만 (출연료가) 저렴한 ABC 방송의 능력자인 조지 스테퍼노펄러스로 교체해라. 그는 무대 위 모든 이들을 더 크고 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고 말했다.

키멀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언급하자 객석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이다.

키멀은 능청스럽게 "조금 전 트루스소셜에 이 글을 올린 전직 대통령이 누구인지 맞혀보라. 누구 아는 사람 없느냐"고 이어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시상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같은 글을 올렸는데 키멀이 자신이 진행하는 토크쇼의 장수 코너인 '유명인이 직접 악플 읽기'를 패러디해 가져다 읽은 것이다.

키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님 고마워요. 시청 감사해요"라더니 "아직도 깨어 있다니 놀랍네요. 그나저나 감옥 갈 때 지나지 않았나요"라고 일침을 놓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혐의 등으로 4차례 형사 기소되는 등 여러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부분을 꼬집은 이 발언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할리우드 영화계를 비롯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진보 성향이 강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인 키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꾸준히 풍자 소재로 삼아왔다.

2018년 1월 자신의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단추'를 언급하며 말 폭탄을 주고받던 상황을 두고 "핵탄두를 가진 두 미치광이가 누가 더 큰 작동 버튼을 가졌는지 뽐내고 있다"고 비꼬았다.

같은 해 2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성관계설이 불거진 전직 포르노 배우 스테파니 클리퍼드가 이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시 크게 분노해 방송사인 ABC 측에 불만을 전달하는 등 외압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도 보도된 바 있다.

올해까지 오스카상 시상식을 4차례 진행한 키멀은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CNN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농담거리로 삼는 것이 시상식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라며 "그가 조롱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놀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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